어지럽도록 어수선하다. 어느 한때 조용한 적이 있었겠냐만은 지금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이 혼란스런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유력 정치인이 미투 사건으로 사라져가고 부동산 광풍으로 모두 가 성이 나 있다. 모두 독이 올라 서로 치고받고 상처입고 상처주기에 지쳐있다. 뭐니 뭐니해도 압권은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재난이다. 벌써 여덟 달째다. 역병이 지구를 휘감는 불안한 시기, 세계는 여전히 코로나와의 전쟁에 여념이 없다.
코로나19는 강력하고 깊은 상흔을 남기고 있다. 8월 12일 현재, 세계의 누적 확진자가 2천만 명을 넘고 사망자도 74만 명에 달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종식을 말하지 못한다. 출구가 보이지 않고 전망이 없다. 이 바이러스는 세상을 초토화하면서 많은 변화를 몰아오고 있다. 이미 활력을 잃어가던 세계 경제가 급속히 침체에 빠졌다. 대봉쇄(Great Lockdown)로 불리는 경제 충격은 과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대침체(Great Recession)나 1930년대의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버금가는 최악의 상황이다. 최근 OECD가 내놓은 경제 전망에 따르면, 올해 전세계 경제성장률은 -6.0%까지 하락하고 37개 전 회원국의 성장률은 하나도 빠짐없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 한다. 지난 대침체(Great Recession) 당시 성장률 -2.5%에 견줘보면 엄청난 충격임에 틀림없다. 코로나 종식이 늦어질수록 강도는 더욱 세질 것이고 그 이후의 충격은 가늠조차 힘들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온 세상의 모습도 아주 낯설다. 전혀 겪어보지 못하던 신세계를 하루하루 경험하고 있다. 공장들이 멈춰서고 글로벌 밸류체인이 단절됐다. 일상의 자유가 사라지고, 강제로 바깥일이 중단됐다. 비대면(untact), 사회적 거리두기 따위의 생소한 단어가 익숙해졌다.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고독한’ 생활을 하게 됐다. 여럿이 모이는 집합교육은 사라지고 원격수업, 화상회의, 원격의료가 늘어났다. 식습관도 송두리째 바뀌고, 장보기 행태도 달라졌다. 식당 밥을 꺼리고 집밥을 먹는 사람이 늘었다. 음식을 나눠 먹는 미덕(?)도 사라졌다. ‘쿠팡’, ‘배민’ 같은 배송기업이 때아닌 활황이다. 새로운 일상이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뜻밖의 기회도 줬다. 인간이 멈추니 자연이 돌아왔다. 경제 봉쇄 수개월 만에 대기 질이 급격히 개선됐다. 인도에서는 30년 만에 히말라야가 보이는 기적(?)도 연출됐다. 경제가 덜 성장한 덕분에 대기가 맑아지고 생태계가 한결 건강해지며 멸종 위기의 동물들이 목숨을 구했다. ‘코로나의 역설’이다. 그러면서 기후위기로 몸살 앓는 지구의 회복을 위해 인간이 해야 할 일이 뭔지 성찰할 시간이 생겼다. 코로나는 우리가 누구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물음을 모두에게 던졌다. 전세계에 퍼진 건 바이러스만이 아니다. 인류의 주류 역사에 거역하는 시위가 번지고, 생태와 환경에 대한 시민과 정치권의 각성도 급성장했다. 이제 환경파괴,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차별적 침범이 질병의 창궐을 초래했다는 데 이견을 다는 전문가들은 없다. 세계의 지성들은, 코로나19로 문명이 한순간 덜컹거리는 혼돈을 돌파하려면, 지금의 위험을 초래한 현대문명의 진실을 살피는 철저한 반성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각국은 새로운 변화를 향해 지혜를 모아가고 있다. 그동안 담론 수준으로 논의되던 사회경제시스템 전환을 향한 실천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 기후위기 대응의 긴박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이 인식되며 앞다퉈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내놓고 있다. 각국 정상들은 코로나 이후 사회 건설을 위한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모두 ‘녹색 새 세상’을 비전으로 내걸었다. 미국의 ‘그린 뉴딜’, 유럽연합의 ‘그린 딜’, 중국의 ‘생태문명’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화석연료 기반 경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념을 공유한다. 지금과 같은 ‘성장 강박’과 경제모델을 유지하면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으며, 더 생태적이고 더 평등한 사회·경제 시스템을 향한 대전환이 절박하다는 공감이 확산되고있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무한하게 긍정하는 현대문명이 이대로 지속되는 한 생태위기, 기후위기, 코로나위기가 사라질 수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14일, 우리 정부도 이러한 세계의 흐름에 발맞춰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대한민국 대전환 선언’을 내놓았다. ‘한국판 뉴딜’이라는 새로운 국가발전전략이 그것이다.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탄소의존 경제에서 저탄소 경제로, 불평등사회에서 포용사회로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했다. 하지만 ‘한국판 뉴딜’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코로나19 재난을 극복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선도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반면,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의 설계’로서는 한참 부족하다는 혹평도 적지 않다.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안이하다, 뉴딜을 얘기하지만 그 내용이 모호하고 새로운 사회계약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혁신적 계획수립도 의욕적 재정투자도 없는 이름만 그린뉴딜인 계획이다, 새로운 100년의 설계에 지역과 농업·농촌이 없다는 따위가 주된 비판이다. 대체로 수긍이 가는 지적이며, 아쉬움이 많은 미완의 계획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빠져있으면 채우면 되고, 부족한 건 메우면 될일이다. 문제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채워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 정부가 내놓은 한국판 뉴딜은 완성본이라 보기 어렵다. 대통령의 말처럼 “한국판 뉴딜은 계속 진화중”인 개념으로 이해하고 지자체, 시민사회, 노동자, 농민이 함께 나서 적극적으로 채워나가는 것이 지금 당장 필요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농업·농촌 부문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합의된 농정개혁 방향을 존중하면서, 코로나19 이후의 변화와 요구를 담은, 새로운 어젠다 설정과 실천전략을 합의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계간 농정연구 제74호에서는 이에 필요한 논의를 모아내고자 했다.
이번 호의 특집은 코로나19 이후의 농업·농촌을 다룬다. 포스트 코로나시대 농업·농촌은 지금과 같을 수 없고, 같아서도 안 된다. 코로나19는 농업과 농촌의 영역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태도와 방식, 그리고 과감한 결단을 통한 대전환을 요구한다. ‘한국판 뉴딜’이라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청사진 속에서 농업·농촌의 미래가 어떻게 구상돼야 하며, 그를 향해 어떤 개혁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채우기 위해 <특집>과 <현장>의 각 세 편의 글과 한 편의 <자료>를 마련했다.
<특집>은 좌담과 논단으로 구성했다. 먼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농업·농촌을 전망하기 위해 두 차례의 특별좌담회를 열었다. 지난 7월 2일, 코로나19 이후 농업·농촌의 일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앞으로 농업·농촌의 사회경제구조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코로나19 재난극복을 넘어 미래의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향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지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늘 현장에서 답을 찾아가는 강마야, 구자인, 김정섭, 장민기, 정민철, 황수철이 함께 했다. 이들의 진솔한 대담을 따라가면서 농업·농촌이 직면한 현실과 그를 돌파하는 해법을 함께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7월 9일 열린 두 번째 좌담에서는, 코로나19 이후 농식품 소비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살펴보고 미래를 전망해 보았다. 여론조사기관, 유통전문언론, 유통현장종사자들과 함께 농식품 소비패턴과 농산물유통의 변화를 놓고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다. 특히, 소비자의 일상생활과 삶의 가치, 소비행태 변화에 관한 한국리서치의 조사결과는 코로나 사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정보를 주고 있다.
국민의 안전한 삶을 위협하는 코로나19에 맞서 우리는 농업과 푸드시스템의 존재의미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팬데믹 속에서 지금의 농업과 푸드시스템은 국민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기에 충분한지 되묻는일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답은 긍정적이지 않다. 유영봉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 농업의 구조 전환’은 이 문제를 여러 측면에서 짚어 보고, “현재의 한국 농업 구조는 향후 우리 국민의 안전한 삶을 담보하는 농업의 기능을 유지하기에는 매우 열악하다”고 꼬집는다. 필자는, 코로나19 위기를 기회 삼아 ‘새로운 농업 구조로의 대전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농지기반의 대대적 정비, 농업노동력의 확보, 농업투자의 유지, 농정가치의 재정비, 추진체계의 근본적 재편, 민간과 공공의 역할분담과 사회적 합의를 강조한다.
코로나19 재난의 극복을 넘어 농업·농촌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지향하는 전환을 구상하는 데는 새로운 도전과 다양한 실험이 필요하다. 이번 호의 <현장>에서는 거버넌스, 에너지 전환, 혁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미래의 시스템 전환 방향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김기현의 ‘농업회의소 운영을 활성화하려면’은 제목 그대로 협치농정 모델로 제시된 농업회의소가 지역 현장에서 제대로 정착하는 데 필수적인 정책과제를 다룬다. 십여 년 이상의 현장 컨설팅 경험을 바탕으로, 농업회의소 활성화를 저해하는 제도, 의식, 관계, 운영 측면의 문제와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축산은 지역사회와 공생할 수 있을까, 공장형 축산은 단지 애물단지일 뿐인가, 기후위기 시대 지속가능한 축산의 꿈은 실현 불가능한가, 생산자·소비자·주민 모두가 만족하고 모두를 위해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축산의 꿈을 지역주민들과 함께 실현해가는 길은 무엇일까. 유리나는 ‘성우농장의 도전, 함께 만드는 에너지 전환 마을’이라는 글에서 그 해법의 일단을 찾고자 한다. 충남 홍성군 결성면 원천마을의 한 양돈 농장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공생의 미래를 열어가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늘 혁신을 얘기하고 적지 않은 연구개발투자를 하고 있지만 결과는 영 신통치 않다. 박지연은 “기술혁신을 통한 농업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기술 수요자인 농업인·농산업기업이 다양한 주체와 상호 협력함으로써 혁신을 이끌어내는 사용자주도형, 네트워크형 농업기술혁신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경기도 버섯 산업을 사례로 농업기술혁신과 현장 적용, 확산의 과정을 짚어보고 지역농업혁신체계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이번 호의 <자료>에는 유럽 그린 딜(European Green Deal)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전략’(farm to fork strategy)을 발췌 번역해 실었다. ‘공정하고 건강하며, 환경친화적인 푸드시스템을 향해’라는 부제(副題)에서 짐작할 수 있듯, 건강한 시민, 건강한 사회, 건강한 지구가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푸드시스템의 도전과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2050년까지 유럽을 최초의 기후중립대륙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는 농업과 먹거리의 대전환, 생산에서 최종소비까지 푸드체인 전반의 거대한 변혁 없이 불가능하다는 유럽 사회의 인식이 잘 담겨있다. 우리의 농업·농촌 뉴딜의 구상에 좋은 참고가 될 자료다.
엎친데 덮친격이라고 할까. 코로나와의 전투가 한창인데 또 다른 환란이 몰아쳤다. 전국이 물바다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역대 최장 기록을 경신한 장마는 필경 기후위기 탓이다.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로 불러 마땅하다고 한다. 우리에게 기후위기를 피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는 데 토를 달 과학자들은 거의 없다. 기후위기 비상사태는 이미 임박한 파국이다. 인류가 화석층에서 잠자고 있는 탄소를 추출하는 방법을 알아채고,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쉬고 있는 탄소를 끄집어내 무한정 태우기 시작하면서 비극은 이미 잉태됐다. 산업혁명 이후 불과 몇백 년의 인류 활동이 지구의 온도를 높이고 기후를 불안정에 빠뜨린 ‘인류세’(Anthropocene)가 지구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우리의 토지관리와 농업 방식도 아주 많은 탄소를 대기로 배출시키고 있다. 지금 우리 삶을 보존하려면 당장 탄소 배출을 멈춰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공장을 멈출 수도, 농사를 중단할 수도 없다. 하지만, 어떻게 생산하고, 어떻게 농사를 짓고, 어떻게 연료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코로나19는 문명 전환을 요하는 경종이다. “폭풍은 지나가고 인류는 살아남겠지만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 것이다”(유발 하라리). 지금 당장 우리가 내리는 결정에 따라 앞으로 세상의 모습이 결정될 것이다.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계속 살아갈 것인가, 담대한 결단으로 지도에도 없는 미지의 땅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힘차게 내딛을 것인가, 우리는 지금 중대한 심판대 위에 올라 서 있다. 어제처럼 오늘을 살아가면 내일은 없다. 결코 아무 일 없었던 듯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다. 우리의 건강과 지구의 건강은 결국 하나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일깨워준 귀한 교훈이다.
발간일 : 2020년 7월 31일 분량 : 237쪽
[책머리에] 결코 아무 일 없었던 듯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 / 황수철 (농정연구센터 이사장)
어지럽도록 어수선하다. 어느 한때 조용한 적이 있었겠냐만은 지금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이 혼란스런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유력 정치인이 미투 사건으로 사라져가고 부동산 광풍으로 모두 가 성이 나 있다. 모두 독이 올라 서로 치고받고 상처입고 상처주기에 지쳐있다. 뭐니 뭐니해도 압권은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재난이다. 벌써 여덟 달째다. 역병이 지구를 휘감는 불안한 시기, 세계는 여전히 코로나와의 전쟁에 여념이 없다.
코로나19는 강력하고 깊은 상흔을 남기고 있다. 8월 12일 현재, 세계의 누적 확진자가 2천만 명을 넘고 사망자도 74만 명에 달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종식을 말하지 못한다. 출구가 보이지 않고 전망이 없다. 이 바이러스는 세상을 초토화하면서 많은 변화를 몰아오고 있다. 이미 활력을 잃어가던 세계 경제가 급속히 침체에 빠졌다. 대봉쇄(Great Lockdown)로 불리는 경제 충격은 과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대침체(Great Recession)나 1930년대의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버금가는 최악의 상황이다. 최근 OECD가 내놓은 경제 전망에 따르면, 올해 전세계 경제성장률은 -6.0%까지 하락하고 37개 전 회원국의 성장률은 하나도 빠짐없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 한다. 지난 대침체(Great Recession) 당시 성장률 -2.5%에 견줘보면 엄청난 충격임에 틀림없다. 코로나 종식이 늦어질수록 강도는 더욱 세질 것이고 그 이후의 충격은 가늠조차 힘들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온 세상의 모습도 아주 낯설다. 전혀 겪어보지 못하던 신세계를 하루하루 경험하고 있다. 공장들이 멈춰서고 글로벌 밸류체인이 단절됐다. 일상의 자유가 사라지고, 강제로 바깥일이 중단됐다. 비대면(untact), 사회적 거리두기 따위의 생소한 단어가 익숙해졌다.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고독한’ 생활을 하게 됐다. 여럿이 모이는 집합교육은 사라지고 원격수업, 화상회의, 원격의료가 늘어났다. 식습관도 송두리째 바뀌고, 장보기 행태도 달라졌다. 식당 밥을 꺼리고 집밥을 먹는 사람이 늘었다. 음식을 나눠 먹는 미덕(?)도 사라졌다. ‘쿠팡’, ‘배민’ 같은 배송기업이 때아닌 활황이다. 새로운 일상이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뜻밖의 기회도 줬다. 인간이 멈추니 자연이 돌아왔다. 경제 봉쇄 수개월 만에 대기 질이 급격히 개선됐다. 인도에서는 30년 만에 히말라야가 보이는 기적(?)도 연출됐다. 경제가 덜 성장한 덕분에 대기가 맑아지고 생태계가 한결 건강해지며 멸종 위기의 동물들이 목숨을 구했다. ‘코로나의 역설’이다. 그러면서 기후위기로 몸살 앓는 지구의 회복을 위해 인간이 해야 할 일이 뭔지 성찰할 시간이 생겼다. 코로나는 우리가 누구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물음을 모두에게 던졌다. 전세계에 퍼진 건 바이러스만이 아니다. 인류의 주류 역사에 거역하는 시위가 번지고, 생태와 환경에 대한 시민과 정치권의 각성도 급성장했다. 이제 환경파괴,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차별적 침범이 질병의 창궐을 초래했다는 데 이견을 다는 전문가들은 없다. 세계의 지성들은, 코로나19로 문명이 한순간 덜컹거리는 혼돈을 돌파하려면, 지금의 위험을 초래한 현대문명의 진실을 살피는 철저한 반성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각국은 새로운 변화를 향해 지혜를 모아가고 있다. 그동안 담론 수준으로 논의되던 사회경제시스템 전환을 향한 실천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 기후위기 대응의 긴박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이 인식되며 앞다퉈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내놓고 있다. 각국 정상들은 코로나 이후 사회 건설을 위한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모두 ‘녹색 새 세상’을 비전으로 내걸었다. 미국의 ‘그린 뉴딜’, 유럽연합의 ‘그린 딜’, 중국의 ‘생태문명’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화석연료 기반 경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념을 공유한다. 지금과 같은 ‘성장 강박’과 경제모델을 유지하면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으며, 더 생태적이고 더 평등한 사회·경제 시스템을 향한 대전환이 절박하다는 공감이 확산되고있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무한하게 긍정하는 현대문명이 이대로 지속되는 한 생태위기, 기후위기, 코로나위기가 사라질 수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14일, 우리 정부도 이러한 세계의 흐름에 발맞춰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대한민국 대전환 선언’을 내놓았다. ‘한국판 뉴딜’이라는 새로운 국가발전전략이 그것이다.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탄소의존 경제에서 저탄소 경제로, 불평등사회에서 포용사회로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했다. 하지만 ‘한국판 뉴딜’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코로나19 재난을 극복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선도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반면,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의 설계’로서는 한참 부족하다는 혹평도 적지 않다.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안이하다, 뉴딜을 얘기하지만 그 내용이 모호하고 새로운 사회계약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혁신적 계획수립도 의욕적 재정투자도 없는 이름만 그린뉴딜인 계획이다, 새로운 100년의 설계에 지역과 농업·농촌이 없다는 따위가 주된 비판이다. 대체로 수긍이 가는 지적이며, 아쉬움이 많은 미완의 계획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빠져있으면 채우면 되고, 부족한 건 메우면 될일이다. 문제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채워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 정부가 내놓은 한국판 뉴딜은 완성본이라 보기 어렵다. 대통령의 말처럼 “한국판 뉴딜은 계속 진화중”인 개념으로 이해하고 지자체, 시민사회, 노동자, 농민이 함께 나서 적극적으로 채워나가는 것이 지금 당장 필요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농업·농촌 부문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합의된 농정개혁 방향을 존중하면서, 코로나19 이후의 변화와 요구를 담은, 새로운 어젠다 설정과 실천전략을 합의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계간 농정연구 제74호에서는 이에 필요한 논의를 모아내고자 했다.
이번 호의 특집은 코로나19 이후의 농업·농촌을 다룬다. 포스트 코로나시대 농업·농촌은 지금과 같을 수 없고, 같아서도 안 된다. 코로나19는 농업과 농촌의 영역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태도와 방식, 그리고 과감한 결단을 통한 대전환을 요구한다. ‘한국판 뉴딜’이라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청사진 속에서 농업·농촌의 미래가 어떻게 구상돼야 하며, 그를 향해 어떤 개혁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채우기 위해 <특집>과 <현장>의 각 세 편의 글과 한 편의 <자료>를 마련했다.
<특집>은 좌담과 논단으로 구성했다. 먼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농업·농촌을 전망하기 위해 두 차례의 특별좌담회를 열었다. 지난 7월 2일, 코로나19 이후 농업·농촌의 일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앞으로 농업·농촌의 사회경제구조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코로나19 재난극복을 넘어 미래의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향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지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늘 현장에서 답을 찾아가는 강마야, 구자인, 김정섭, 장민기, 정민철, 황수철이 함께 했다. 이들의 진솔한 대담을 따라가면서 농업·농촌이 직면한 현실과 그를 돌파하는 해법을 함께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7월 9일 열린 두 번째 좌담에서는, 코로나19 이후 농식품 소비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살펴보고 미래를 전망해 보았다. 여론조사기관, 유통전문언론, 유통현장종사자들과 함께 농식품 소비패턴과 농산물유통의 변화를 놓고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다. 특히, 소비자의 일상생활과 삶의 가치, 소비행태 변화에 관한 한국리서치의 조사결과는 코로나 사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정보를 주고 있다.
국민의 안전한 삶을 위협하는 코로나19에 맞서 우리는 농업과 푸드시스템의 존재의미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팬데믹 속에서 지금의 농업과 푸드시스템은 국민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기에 충분한지 되묻는일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답은 긍정적이지 않다. 유영봉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 농업의 구조 전환’은 이 문제를 여러 측면에서 짚어 보고, “현재의 한국 농업 구조는 향후 우리 국민의 안전한 삶을 담보하는 농업의 기능을 유지하기에는 매우 열악하다”고 꼬집는다. 필자는, 코로나19 위기를 기회 삼아 ‘새로운 농업 구조로의 대전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농지기반의 대대적 정비, 농업노동력의 확보, 농업투자의 유지, 농정가치의 재정비, 추진체계의 근본적 재편, 민간과 공공의 역할분담과 사회적 합의를 강조한다.
코로나19 재난의 극복을 넘어 농업·농촌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지향하는 전환을 구상하는 데는 새로운 도전과 다양한 실험이 필요하다. 이번 호의 <현장>에서는 거버넌스, 에너지 전환, 혁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미래의 시스템 전환 방향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김기현의 ‘농업회의소 운영을 활성화하려면’은 제목 그대로 협치농정 모델로 제시된 농업회의소가 지역 현장에서 제대로 정착하는 데 필수적인 정책과제를 다룬다. 십여 년 이상의 현장 컨설팅 경험을 바탕으로, 농업회의소 활성화를 저해하는 제도, 의식, 관계, 운영 측면의 문제와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축산은 지역사회와 공생할 수 있을까, 공장형 축산은 단지 애물단지일 뿐인가, 기후위기 시대 지속가능한 축산의 꿈은 실현 불가능한가, 생산자·소비자·주민 모두가 만족하고 모두를 위해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축산의 꿈을 지역주민들과 함께 실현해가는 길은 무엇일까. 유리나는 ‘성우농장의 도전, 함께 만드는 에너지 전환 마을’이라는 글에서 그 해법의 일단을 찾고자 한다. 충남 홍성군 결성면 원천마을의 한 양돈 농장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공생의 미래를 열어가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늘 혁신을 얘기하고 적지 않은 연구개발투자를 하고 있지만 결과는 영 신통치 않다. 박지연은 “기술혁신을 통한 농업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기술 수요자인 농업인·농산업기업이 다양한 주체와 상호 협력함으로써 혁신을 이끌어내는 사용자주도형, 네트워크형 농업기술혁신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경기도 버섯 산업을 사례로 농업기술혁신과 현장 적용, 확산의 과정을 짚어보고 지역농업혁신체계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이번 호의 <자료>에는 유럽 그린 딜(European Green Deal)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전략’(farm to fork strategy)을 발췌 번역해 실었다. ‘공정하고 건강하며, 환경친화적인 푸드시스템을 향해’라는 부제(副題)에서 짐작할 수 있듯, 건강한 시민, 건강한 사회, 건강한 지구가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푸드시스템의 도전과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2050년까지 유럽을 최초의 기후중립대륙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는 농업과 먹거리의 대전환, 생산에서 최종소비까지 푸드체인 전반의 거대한 변혁 없이 불가능하다는 유럽 사회의 인식이 잘 담겨있다. 우리의 농업·농촌 뉴딜의 구상에 좋은 참고가 될 자료다.
엎친데 덮친격이라고 할까. 코로나와의 전투가 한창인데 또 다른 환란이 몰아쳤다. 전국이 물바다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역대 최장 기록을 경신한 장마는 필경 기후위기 탓이다.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로 불러 마땅하다고 한다. 우리에게 기후위기를 피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는 데 토를 달 과학자들은 거의 없다. 기후위기 비상사태는 이미 임박한 파국이다. 인류가 화석층에서 잠자고 있는 탄소를 추출하는 방법을 알아채고,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쉬고 있는 탄소를 끄집어내 무한정 태우기 시작하면서 비극은 이미 잉태됐다. 산업혁명 이후 불과 몇백 년의 인류 활동이 지구의 온도를 높이고 기후를 불안정에 빠뜨린 ‘인류세’(Anthropocene)가 지구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우리의 토지관리와 농업 방식도 아주 많은 탄소를 대기로 배출시키고 있다. 지금 우리 삶을 보존하려면 당장 탄소 배출을 멈춰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공장을 멈출 수도, 농사를 중단할 수도 없다. 하지만, 어떻게 생산하고, 어떻게 농사를 짓고, 어떻게 연료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코로나19는 문명 전환을 요하는 경종이다. “폭풍은 지나가고 인류는 살아남겠지만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 것이다”(유발 하라리). 지금 당장 우리가 내리는 결정에 따라 앞으로 세상의 모습이 결정될 것이다.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계속 살아갈 것인가, 담대한 결단으로 지도에도 없는 미지의 땅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힘차게 내딛을 것인가, 우리는 지금 중대한 심판대 위에 올라 서 있다. 어제처럼 오늘을 살아가면 내일은 없다. 결코 아무 일 없었던 듯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다. 우리의 건강과 지구의 건강은 결국 하나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일깨워준 귀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