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역사가들은 이날을 어떻게 기록할까? 너무 늦었다고 할까, 아니면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할까? 2020년 10월 28일, 드디어 한국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에 가장 무책임하고 게으른 나라, 이른바 기후악당이라는 오명을 벗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 중립(넷제로)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탄소중립이란,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을 계산해 순배출량이 0(제로)이 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미 전 세계 70여개 국가들이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중국과 일본도 각각 2060 년, 2050년을 목표로 최근 이 대열에 동참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회원국 중 미국, 일본, 독일, 캐나다에 이어 다섯 번째로 온실 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로서, 우리나라의 결단은 더 빨리 밟았어야 할 당연한 수순이다.
탄소중립 선언으로 이제 우리가 어디로 달려갈지 목표는 분명해졌다. 그리고 해야 할 일도 대체로 정해져 있다. 당연하겠지만, 탄소배출을 줄이는 일이 무엇보다 급선무다. 이미 국제사회는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막아야 한다고 합의했다(2018년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 IPCC의 1.5도 보고서). 그러려면 에너지 분야의 화석연료를 대폭 줄이고 재생에너지로 급격하게 전환해야 한다. 기본 시간표도 나와 있다. 10 년만 빨랐으면 매년 평균 3.3%씩 줄여도 됐지만, 지금은 7.6%씩 감축 해야 한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가 뭘까? 그건 한마디로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 코로나19 위기처럼 세계의 공장들이 멈춰서는 엄청난 충격이 있어야 도달 가능한 수준이다. 그만큼 강력하고 특단의 대책이 뒤따라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적극 재정과 비상한 각오로 과감한 온실가스 통제와 재생에너지 확대가 없으면 넷제로 선언은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 구체적인 정책과 법제화, 이해관계자의 설득, 과감한 행동계획과 예산투자 등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IPCC)가 강조한 바와 같이, 탄소중립의 길을 가려면 에너지, 산업시스템, 토지이용, 수송과 건물 등을 포함해 도시와 농촌의 모든 영역에서 빠르고 광범위한 엄청난 변화가 불가피하다. 그 동안 시간을 허비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는 셈이다.
모든 것을 바꿔야 하는 이른바 대전환의 시대다. 세계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코로나19 위기가 닥치면서 더욱 다급해졌다. 미국, 유럽연합, 중국 등 모든 나라들이 그린 뉴딜을 새로운 타개책으로 주목한다. 일과성 유행이 아니다. 지금 그린 뉴딜은 한 국가의 정책 선언이 아니라 전 세계가 나선 동시다발적 선언이다. 한국 정부도 세계의 흐름에 동참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판 뉴딜이라는 대한민국 대전환 선언을 내놓았다.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휴먼(사회안전망) 뉴딜, 지역균형 뉴딜의 4대 기둥으로 100년의 미래를 새로 설계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국가발전 축을 지역 중심으로 전환하겠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지역균형 뉴딜을 한국판 뉴딜의 성패를 걸고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힌 바 있다. 마땅한 처사이자 바람직한 미래 전략으로 환영할 만한 발언이다. 다만, 아쉽다면 지역균형 뉴딜의 실체가 분명치 않고, 그 속에 농산어촌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촌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라는 이번 호 <특집>은 이런 배경에서 기획됐다. 코로나19 위기로 촉발된 한국판 뉴딜 시대에 농촌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그러한 변화를 위해 농정개혁은 어떻게 추진돼야 하는지 논의해보고자 했다. 계간 농정연구 73호, 74호에 이은 코로나19 특집 시리즈의 일환이다.
첫 번째 특집은 지난 10월 열린 농정연구센터 제323회 세미나로 엮었 다. ‘복합위기 시대, 농정개혁의 길을 되묻다’라는 주제로 황수철이 발제를 하고 김태연, 유영봉, 이명헌, 이태호가 패널 토론을 했다. 이 자리에서 황수철은 ‘한국판 뉴딜’에 대응하는 ‘농산어촌 365 뉴딜’을 제안하며, 농촌 부흥(르네상스)이 이뤄져야 한국판 뉴딜의 비전인 ‘선도국가 대한민국 100년’의 교두보가 마련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람과 환경 중심 의 차세대 농촌’을 비전으로 농촌 부흥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추진하자는 주장이다. 그리고 비전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으로는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 농산어촌 르네상스 프로젝트, 생산·유통의 스마트 화(디지털화), 푸드플랜을 통한 먹거리 기본권 보장을 제시한다.
농촌을 새롭게 만들어가기 위한 실천전략으로서 새로운 농촌정책은 어때야 할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열어가는 농촌정책의 새로운 길’ 을 두 번째 특집 글로 뽑았다. 9월에 열린 농정연구센터 제322회 세미나에서 송미령이 발표한 내용을 수정·보완한 글이다. 우리는 어떤 농촌을 꿈꾸는가, 지난 농촌정책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기후위기·코로나19 위기 시대 농촌과 농촌정책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지역균형 뉴딜 시대에 농촌정책은 어떻게 전환돼야 하는가, 이 글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과제들이다. 미래의 농촌정책은, 농촌이 국민들의 꿈 을 실현하는 공간이 되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는게 필자의 주장이다.
최근 농촌정책 분야의 핫 이슈 가운데 하나가 농촌공간계획 제도의 도입이다. 누구나 느끼는 바이지만, 지금의 농촌은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을 뿐더러 인구의 과소화·공동화 등으로 자원을 보전·활용하는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원인이야 여럿 있겠지만,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공간계획이 없다는 점도 늘 꼽히던 주된 이유였다. 이런 문제도 포함해, 농촌공간의 효율적·체계적 관리를 꾀하는 농촌공간계획 제도 도입 논의가 한창이다. 이유직은 ‘농촌공간계획 제도의 올바른 정립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제도의 도입은 원칙적으로 환영하지만 보완할 과 제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농촌공간의 합리적인 재구조화, 농촌 토지 이용의 효율성 제고와 난개발 방지, 농촌 SOC의 합리적 공급을 통한 삶 의 질 담보, 농촌다움의 보전과 다원적 가치 제고라는 지향점을 분명히 한 다음에, 계획체계의 주요 이슈별 대안을 제안하고 있다.
아직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는 않지만, 새로운 미래 농촌 구상 에서 앞으로 큰 쟁점이 될 문제를 이번 호 <이슈>로 선정했다. 하나는 기후변화 대응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농업의 스마트화다.
농업·농촌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직접 받을 뿐더러 국가 전체의 기후 위기 극복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그래서 많은 선진국들이 농업· 농촌의 기후변화 대응 전략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유럽연합(EU)의 ‘농장에서 식탁까지’ 전략이 그린딜(green deal)의 핵심축을 이루는 게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우리의 기후변화 대응에서 농업·농촌은 거의 주목되지 않으며, 그나마도 농업 생산의 영역에만 치우쳐 있다. 장민기 는 이런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업·농촌 기후변화 대응 전략을 바꾸자’라는 글을 통해, 그간의 농업 분야 온실가스 감축 논의와 농업·농촌의 에너지 전환 논의가 지나치게 적응(adaptation) 중심이고 수세적·방어적이었다고 평가하면서, 관점과 전략을 바꿔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도농관계의 재정립, 지역자원 순 환체계 구상, 농촌생활인프라의 그린화, 전환을 주도할 주체의 형성 등 새로운 기후변화 대응 방향을 고민해보자는 제안이다.
그동안 농업의 모습은 지속적으로 바뀌어 왔다. 경험 기반 농업이 데이터 기반 농업으로 바뀌어가는 것도 그 중 주목되는 큰 흐름의 하나다. 이른바 4차산업혁명 기술이 이를 한층 더 부추기고 있다. 이렇게 데이터 기반 농업으로 전환을 촉진하는 것이 바로 농업의 스마트화다. 농업의 스마트화는 생산-유통-소비의 모든 과정이 똑똑하게 관리되는 것을 말한다. 선진국들은 우리보다 앞서 이 모든 과정의 스마트화를 촉진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생산 현장의 스마트화에 머물러 있다. 다시 말해, 생산단계 에 집중하는 ‘스마트팜’ 중심으로 논의되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생산 이전과 이후의 모든 단계를 아우르는 본래 의미의 ‘스마트농업’ 수준까지 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박흔동의 ‘농업의 스마트화를 위한 바람직한 정책 방향’은 ‘스마트팜’이 ‘스마트농업’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기 위한 과제를 짚고, 그에 관련한 산업과 정책의 발전 과제를 검토하고 있다.
계간 농정연구에서는 그동안 외국의 정책 변화 등을 <자료>라는 이름으로 소개해왔다. 이번 호부터는 <동향>이라는 꼭지로 주요국의 사정을 다루고자 한다. 이번에는 네덜란드의 ‘순환형 농업’과 독일의 먹거리 정책을 소개한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경제활동은 어땠을까? 자연계에서 추출한 자연과 에너지로 제품을 생산·소비해 가치를 산출하며, 소비가 끝난 제품은 자연계에 버리는 형태가 주류였다. 이런 경제는 소비된 자원을 리싸이클하지 않고 바로 폐기하므로, 사물이 직선적으로 흘러가는 경제라는 의미에서 직선 경제(linear economy)라고도 불린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서는 자원과 에너지의 부족, 지구온난화, 폐기물 처리 등 환경문제가 심각해졌고, 환경부하를 줄이라는 요구가 비등했다. 그래서 자원과 제품을 경제활동의 여러 단계(생산·소비·폐기 등)에서 원을 그리듯 순환시켜(circular), 자원과 에너지 소비, 폐기물 발생을 줄이고 순환과정 자체에서도 가치가 만들어지는, 경제성장과 환경부하 삭감 둘 다를 지향하는 경제 개념이 제안 됐다. 바로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다. 유럽연합에서는 순환경제를 향한 실천이 지속적으로 강조됐으며, 최근의 그린딜(green deal)에서는 핵심축의 하나가 됐다. 나아가 순환형 농업(circular agriculture)이라는 개념이 다시 각국 농정의 중심부로 들어오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네덜란드다. 농업·자연·식품품질부의 카롤라 스카우텐(Carola Schouten) 장관은 2018년 8월 순환형 농업(Kringlooplandbouw)을 네덜란드 농업의 미래 비전으로 천명했다. 반세기가 넘도록 네덜란드와 유럽의 농업정책은 가능하면 많은 먹거리를 싼 가격과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농민들에게는 합리적 수입을 보장해주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지금의 우리처럼, 이른 바 생산주의 농업 중심의 농정이 지배적이었다. 여기서 강조되는 핵심 개념은 집약화(intensification)와 효율성(efficiency)이었다. 효율성에 기반 한 성과 중심의 농업이 주류(mainstream)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집약화와 효율을 넘어 모든 자원 이용의 최적화(optimization)가 한층 더 강조되고, 오히려 그런 방향으로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대두하고 있다. 생산을 위해 투입되는 원재료의 양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먹거리의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최대한 재활용하는 등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중시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순환형 농업, 네덜란드 농업의 미래 비전’은 이를 소개한 글이다. “농업·자연·먹거리, 그 중요성과 연관성 - 네덜란드를 순환형 농업의 리더로 만들자”라는 제목으로 네덜란드 농업·자연·식품품질부에서 발간한 소책자를 발췌 번역해 실었다.
2020년 8월 독일연방 영양농림부의 학문자문위원회는 장관 앞으로 보내는 자문서를 통해 ‘지속가능한 영양을 위한 정책’을 제안했다. 이명헌은, 통합적 영양정책과 공정한 영양환경을 조성하라는 부제를 단 이 자문서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몇 가지 시사점을 정리했다. 새로운 영양정책을 위한 핵심 제언은 세 가지다. 첫째, 영양정책의 목표가 건강뿐 아니라 사회성, 동물복지, 환경이라는 4대 영역을 포괄해야 한다. 둘째, 영양정책에서 지금까지 강조되지 않은 노출, 접근 단계의 사회적 조건 개선을 위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지금보다 훨씬 포괄적이고 의무화된 표시제와 함께 광고 등에서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 셋째, 한편으로는 축산소비와 설탕소비를 줄이고, 다른 한편으로 고품질의 학교 무상급식을 전면적으로 확충하고 동물친화적 축산을 지원하기 위해서, 조세와 정부보조금의 체계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기후변화, 에너지 문제 등 시대적 과제를 앞에 둔 독일사회의 논의는 새로운 미래를 고민하는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기후변화는 우리 시대가 직면한 가장 커다란 과제가 됐다. 그리고 기후 변화가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라는 점에 대한 큰 틀의 합의도 이미 이뤄졌다. 현 정부는 그린 뉴딜을 강조하고 탄소중립도 선언했다. 하지만 기후문제는 아직 국가 의제 1순위가 아니다. 특히, 농정에서 기후 의제는 그 존재감이 미미하다. 게다가 주장과 말만 앞설 뿐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 에너지 전환을 포함해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은 하지만 어떻게 할지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연소하는 지금의 농업 모델을 바꿔야 한다고, 비료와 농약을 쓰지 말고 항생제를 추방해야 한다고 말들은 하지만 제대로 된 실천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이 지경까지 내몰린 건 몰라서 그런 게 아니다. 우리 모두의 집단적 외면으로 수십 년을 허송해 온 탓이다. 알면서도 눈을 감고, 알면서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덮어놓을 수가 없 다. 세계 유수의 과학자들은 이제 우리가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법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남은 건 오로지 급진적인 변화뿐이라는 데 모두 한목소리다. “유례 없는 비상사태가 닥친 만큼, 우리 앞에는 문명의 붕괴를 막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에 돌입하는 것 외 에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이제껏 걸어온 경로를 바꾸어 완전히 새로운 지구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 이 대안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의 경로는 제멋대로 바뀌고 말 것이다.”(노르웨이 전 수상 그로 할렘 브룬틀란 외). “생태계 전체가 무너지고 대규모 멸종의 시작을 앞두고 있는데, 당신은 돈과 영원한 경제 성장이라는 꾸며낸 이야기만 늘어놓 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그레타 툰베리). 이처럼 섬뜩한 경고와 호소가 넘쳐나고 있지만, 세상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우리는 지금 엄중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기후재앙을 피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꿀 것 인가, 아니면 기후전쟁에서 패배할 것인가?
발간일 : 2020년 10월 31일 분량 : 222쪽
[책머리에] 기후전쟁에서 패배할 것인가? / 황수철(농정연구센터 이사장)
훗날, 역사가들은 이날을 어떻게 기록할까? 너무 늦었다고 할까, 아니면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할까? 2020년 10월 28일, 드디어 한국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에 가장 무책임하고 게으른 나라, 이른바 기후악당이라는 오명을 벗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 중립(넷제로)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탄소중립이란,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을 계산해 순배출량이 0(제로)이 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미 전 세계 70여개 국가들이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중국과 일본도 각각 2060 년, 2050년을 목표로 최근 이 대열에 동참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회원국 중 미국, 일본, 독일, 캐나다에 이어 다섯 번째로 온실 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로서, 우리나라의 결단은 더 빨리 밟았어야 할 당연한 수순이다.
탄소중립 선언으로 이제 우리가 어디로 달려갈지 목표는 분명해졌다. 그리고 해야 할 일도 대체로 정해져 있다. 당연하겠지만, 탄소배출을 줄이는 일이 무엇보다 급선무다. 이미 국제사회는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막아야 한다고 합의했다(2018년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 IPCC의 1.5도 보고서). 그러려면 에너지 분야의 화석연료를 대폭 줄이고 재생에너지로 급격하게 전환해야 한다. 기본 시간표도 나와 있다. 10 년만 빨랐으면 매년 평균 3.3%씩 줄여도 됐지만, 지금은 7.6%씩 감축 해야 한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가 뭘까? 그건 한마디로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 코로나19 위기처럼 세계의 공장들이 멈춰서는 엄청난 충격이 있어야 도달 가능한 수준이다. 그만큼 강력하고 특단의 대책이 뒤따라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적극 재정과 비상한 각오로 과감한 온실가스 통제와 재생에너지 확대가 없으면 넷제로 선언은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 구체적인 정책과 법제화, 이해관계자의 설득, 과감한 행동계획과 예산투자 등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IPCC)가 강조한 바와 같이, 탄소중립의 길을 가려면 에너지, 산업시스템, 토지이용, 수송과 건물 등을 포함해 도시와 농촌의 모든 영역에서 빠르고 광범위한 엄청난 변화가 불가피하다. 그 동안 시간을 허비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는 셈이다.
모든 것을 바꿔야 하는 이른바 대전환의 시대다. 세계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코로나19 위기가 닥치면서 더욱 다급해졌다. 미국, 유럽연합, 중국 등 모든 나라들이 그린 뉴딜을 새로운 타개책으로 주목한다. 일과성 유행이 아니다. 지금 그린 뉴딜은 한 국가의 정책 선언이 아니라 전 세계가 나선 동시다발적 선언이다. 한국 정부도 세계의 흐름에 동참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판 뉴딜이라는 대한민국 대전환 선언을 내놓았다.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휴먼(사회안전망) 뉴딜, 지역균형 뉴딜의 4대 기둥으로 100년의 미래를 새로 설계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국가발전 축을 지역 중심으로 전환하겠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지역균형 뉴딜을 한국판 뉴딜의 성패를 걸고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힌 바 있다. 마땅한 처사이자 바람직한 미래 전략으로 환영할 만한 발언이다. 다만, 아쉽다면 지역균형 뉴딜의 실체가 분명치 않고, 그 속에 농산어촌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촌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라는 이번 호 <특집>은 이런 배경에서 기획됐다. 코로나19 위기로 촉발된 한국판 뉴딜 시대에 농촌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그러한 변화를 위해 농정개혁은 어떻게 추진돼야 하는지 논의해보고자 했다. 계간 농정연구 73호, 74호에 이은 코로나19 특집 시리즈의 일환이다.
첫 번째 특집은 지난 10월 열린 농정연구센터 제323회 세미나로 엮었 다. ‘복합위기 시대, 농정개혁의 길을 되묻다’라는 주제로 황수철이 발제를 하고 김태연, 유영봉, 이명헌, 이태호가 패널 토론을 했다. 이 자리에서 황수철은 ‘한국판 뉴딜’에 대응하는 ‘농산어촌 365 뉴딜’을 제안하며, 농촌 부흥(르네상스)이 이뤄져야 한국판 뉴딜의 비전인 ‘선도국가 대한민국 100년’의 교두보가 마련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람과 환경 중심 의 차세대 농촌’을 비전으로 농촌 부흥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추진하자는 주장이다. 그리고 비전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으로는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 농산어촌 르네상스 프로젝트, 생산·유통의 스마트 화(디지털화), 푸드플랜을 통한 먹거리 기본권 보장을 제시한다.
농촌을 새롭게 만들어가기 위한 실천전략으로서 새로운 농촌정책은 어때야 할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열어가는 농촌정책의 새로운 길’ 을 두 번째 특집 글로 뽑았다. 9월에 열린 농정연구센터 제322회 세미나에서 송미령이 발표한 내용을 수정·보완한 글이다. 우리는 어떤 농촌을 꿈꾸는가, 지난 농촌정책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기후위기·코로나19 위기 시대 농촌과 농촌정책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지역균형 뉴딜 시대에 농촌정책은 어떻게 전환돼야 하는가, 이 글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과제들이다. 미래의 농촌정책은, 농촌이 국민들의 꿈 을 실현하는 공간이 되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는게 필자의 주장이다.
최근 농촌정책 분야의 핫 이슈 가운데 하나가 농촌공간계획 제도의 도입이다. 누구나 느끼는 바이지만, 지금의 농촌은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을 뿐더러 인구의 과소화·공동화 등으로 자원을 보전·활용하는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원인이야 여럿 있겠지만,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공간계획이 없다는 점도 늘 꼽히던 주된 이유였다. 이런 문제도 포함해, 농촌공간의 효율적·체계적 관리를 꾀하는 농촌공간계획 제도 도입 논의가 한창이다. 이유직은 ‘농촌공간계획 제도의 올바른 정립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제도의 도입은 원칙적으로 환영하지만 보완할 과 제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농촌공간의 합리적인 재구조화, 농촌 토지 이용의 효율성 제고와 난개발 방지, 농촌 SOC의 합리적 공급을 통한 삶 의 질 담보, 농촌다움의 보전과 다원적 가치 제고라는 지향점을 분명히 한 다음에, 계획체계의 주요 이슈별 대안을 제안하고 있다.
아직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는 않지만, 새로운 미래 농촌 구상 에서 앞으로 큰 쟁점이 될 문제를 이번 호 <이슈>로 선정했다. 하나는 기후변화 대응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농업의 스마트화다.
농업·농촌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직접 받을 뿐더러 국가 전체의 기후 위기 극복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그래서 많은 선진국들이 농업· 농촌의 기후변화 대응 전략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유럽연합(EU)의 ‘농장에서 식탁까지’ 전략이 그린딜(green deal)의 핵심축을 이루는 게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우리의 기후변화 대응에서 농업·농촌은 거의 주목되지 않으며, 그나마도 농업 생산의 영역에만 치우쳐 있다. 장민기 는 이런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업·농촌 기후변화 대응 전략을 바꾸자’라는 글을 통해, 그간의 농업 분야 온실가스 감축 논의와 농업·농촌의 에너지 전환 논의가 지나치게 적응(adaptation) 중심이고 수세적·방어적이었다고 평가하면서, 관점과 전략을 바꿔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도농관계의 재정립, 지역자원 순 환체계 구상, 농촌생활인프라의 그린화, 전환을 주도할 주체의 형성 등 새로운 기후변화 대응 방향을 고민해보자는 제안이다.
그동안 농업의 모습은 지속적으로 바뀌어 왔다. 경험 기반 농업이 데이터 기반 농업으로 바뀌어가는 것도 그 중 주목되는 큰 흐름의 하나다. 이른바 4차산업혁명 기술이 이를 한층 더 부추기고 있다. 이렇게 데이터 기반 농업으로 전환을 촉진하는 것이 바로 농업의 스마트화다. 농업의 스마트화는 생산-유통-소비의 모든 과정이 똑똑하게 관리되는 것을 말한다. 선진국들은 우리보다 앞서 이 모든 과정의 스마트화를 촉진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생산 현장의 스마트화에 머물러 있다. 다시 말해, 생산단계 에 집중하는 ‘스마트팜’ 중심으로 논의되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생산 이전과 이후의 모든 단계를 아우르는 본래 의미의 ‘스마트농업’ 수준까지 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박흔동의 ‘농업의 스마트화를 위한 바람직한 정책 방향’은 ‘스마트팜’이 ‘스마트농업’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기 위한 과제를 짚고, 그에 관련한 산업과 정책의 발전 과제를 검토하고 있다.
계간 농정연구에서는 그동안 외국의 정책 변화 등을 <자료>라는 이름으로 소개해왔다. 이번 호부터는 <동향>이라는 꼭지로 주요국의 사정을 다루고자 한다. 이번에는 네덜란드의 ‘순환형 농업’과 독일의 먹거리 정책을 소개한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경제활동은 어땠을까? 자연계에서 추출한 자연과 에너지로 제품을 생산·소비해 가치를 산출하며, 소비가 끝난 제품은 자연계에 버리는 형태가 주류였다. 이런 경제는 소비된 자원을 리싸이클하지 않고 바로 폐기하므로, 사물이 직선적으로 흘러가는 경제라는 의미에서 직선 경제(linear economy)라고도 불린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서는 자원과 에너지의 부족, 지구온난화, 폐기물 처리 등 환경문제가 심각해졌고, 환경부하를 줄이라는 요구가 비등했다. 그래서 자원과 제품을 경제활동의 여러 단계(생산·소비·폐기 등)에서 원을 그리듯 순환시켜(circular), 자원과 에너지 소비, 폐기물 발생을 줄이고 순환과정 자체에서도 가치가 만들어지는, 경제성장과 환경부하 삭감 둘 다를 지향하는 경제 개념이 제안 됐다. 바로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다. 유럽연합에서는 순환경제를 향한 실천이 지속적으로 강조됐으며, 최근의 그린딜(green deal)에서는 핵심축의 하나가 됐다. 나아가 순환형 농업(circular agriculture)이라는 개념이 다시 각국 농정의 중심부로 들어오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네덜란드다. 농업·자연·식품품질부의 카롤라 스카우텐(Carola Schouten) 장관은 2018년 8월 순환형 농업(Kringlooplandbouw)을 네덜란드 농업의 미래 비전으로 천명했다. 반세기가 넘도록 네덜란드와 유럽의 농업정책은 가능하면 많은 먹거리를 싼 가격과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농민들에게는 합리적 수입을 보장해주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지금의 우리처럼, 이른 바 생산주의 농업 중심의 농정이 지배적이었다. 여기서 강조되는 핵심 개념은 집약화(intensification)와 효율성(efficiency)이었다. 효율성에 기반 한 성과 중심의 농업이 주류(mainstream)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집약화와 효율을 넘어 모든 자원 이용의 최적화(optimization)가 한층 더 강조되고, 오히려 그런 방향으로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대두하고 있다. 생산을 위해 투입되는 원재료의 양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먹거리의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최대한 재활용하는 등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중시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순환형 농업, 네덜란드 농업의 미래 비전’은 이를 소개한 글이다. “농업·자연·먹거리, 그 중요성과 연관성 - 네덜란드를 순환형 농업의 리더로 만들자”라는 제목으로 네덜란드 농업·자연·식품품질부에서 발간한 소책자를 발췌 번역해 실었다.
2020년 8월 독일연방 영양농림부의 학문자문위원회는 장관 앞으로 보내는 자문서를 통해 ‘지속가능한 영양을 위한 정책’을 제안했다. 이명헌은, 통합적 영양정책과 공정한 영양환경을 조성하라는 부제를 단 이 자문서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몇 가지 시사점을 정리했다. 새로운 영양정책을 위한 핵심 제언은 세 가지다. 첫째, 영양정책의 목표가 건강뿐 아니라 사회성, 동물복지, 환경이라는 4대 영역을 포괄해야 한다. 둘째, 영양정책에서 지금까지 강조되지 않은 노출, 접근 단계의 사회적 조건 개선을 위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지금보다 훨씬 포괄적이고 의무화된 표시제와 함께 광고 등에서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 셋째, 한편으로는 축산소비와 설탕소비를 줄이고, 다른 한편으로 고품질의 학교 무상급식을 전면적으로 확충하고 동물친화적 축산을 지원하기 위해서, 조세와 정부보조금의 체계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기후변화, 에너지 문제 등 시대적 과제를 앞에 둔 독일사회의 논의는 새로운 미래를 고민하는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기후변화는 우리 시대가 직면한 가장 커다란 과제가 됐다. 그리고 기후 변화가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라는 점에 대한 큰 틀의 합의도 이미 이뤄졌다. 현 정부는 그린 뉴딜을 강조하고 탄소중립도 선언했다. 하지만 기후문제는 아직 국가 의제 1순위가 아니다. 특히, 농정에서 기후 의제는 그 존재감이 미미하다. 게다가 주장과 말만 앞설 뿐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 에너지 전환을 포함해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은 하지만 어떻게 할지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연소하는 지금의 농업 모델을 바꿔야 한다고, 비료와 농약을 쓰지 말고 항생제를 추방해야 한다고 말들은 하지만 제대로 된 실천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이 지경까지 내몰린 건 몰라서 그런 게 아니다. 우리 모두의 집단적 외면으로 수십 년을 허송해 온 탓이다. 알면서도 눈을 감고, 알면서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덮어놓을 수가 없 다. 세계 유수의 과학자들은 이제 우리가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법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남은 건 오로지 급진적인 변화뿐이라는 데 모두 한목소리다. “유례 없는 비상사태가 닥친 만큼, 우리 앞에는 문명의 붕괴를 막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에 돌입하는 것 외 에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이제껏 걸어온 경로를 바꾸어 완전히 새로운 지구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 이 대안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의 경로는 제멋대로 바뀌고 말 것이다.”(노르웨이 전 수상 그로 할렘 브룬틀란 외). “생태계 전체가 무너지고 대규모 멸종의 시작을 앞두고 있는데, 당신은 돈과 영원한 경제 성장이라는 꾸며낸 이야기만 늘어놓 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그레타 툰베리). 이처럼 섬뜩한 경고와 호소가 넘쳐나고 있지만, 세상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우리는 지금 엄중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기후재앙을 피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꿀 것 인가, 아니면 기후전쟁에서 패배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