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잠에 빠져 모든 걸 잊고 싶은 때가 있다. 유난히도 길고 힘든 일이 끝모르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2020년이 꼭 그랬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평범했던 일상이 한순간에 멈춰버렸다.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는 비극적 상황이 언제 끝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 사람들이 사람들을 피해야 하고, 살림살이는 더 어려워지기만하고, 유달리 큰 재난이 끊이지 않는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인류가 그동안 만들어온 시스템의 한계를 민낯으로 드러냈다.
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여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소띠 해, 사람들은 기대와 희망을 말한다. 그리고 일상의 회복을 얘기한다. 아마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일 게다. 정말 돌아갈 수 있을까? 회복은 바람직할까? 어디로 돌아간다는 걸까? 위기 이전,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은 아름다웠을까?
어느 순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마스크와 거리두기, 온라인 학교, 온라인 회의, 온라인 거래가 일상이 됐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했다. 어느 칼럼니스트 말처럼 세상은 코로나 이전(BC)과 코로나 이후(AC)로 나뉠지 모른다. 코로나 이전 시대의 가치와 표준은 점점 무의미해졌다. 노멀(normal)이라 믿었던 질서는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가치와 표준(new normal)의 시대가 왔다. 그에 맞춰 일상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한다. 이제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아니, 과거와 똑같은 형태로 돌아가서는 절대 좋은 삶을 구현할 수 없다. 사람들은 이제 깨닫기 시작했다. 자연 존중의 자세 없이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걸, 내 이웃의 안전이 곧 나의 안전이라는 걸, 그래서 남들과의 연대와 협력이 옳은 결정이라는 걸 알아채기 시작했다. 그게 코로나19가 우리 인류에게 준 커다란 교훈이다.
이제 필요한 건 뭘까? 일상의 회복은 중요하지만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위기 이전으로 단순히 돌아간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과거의 방식으로는 해답을 구할 수 없다. 새로운 삶의 방식, 삶의 구조적 전환 없이 미래를 얘기할 수 없다. 당장 필요한 건, 전혀 다른 사회를 상상하고, 곧바로 실천에 옮기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뉴딜을 얘기한다. 아주 심각한 위기를 전혀 다른 사회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은 사례로서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뉴딜에 주목하고 한국판 뉴딜을 주창한다. 뉴딜정책으로 사회구조가 바뀐 미국이 새로운 번영의 시기를 맞이한 것처럼, 우리도 지금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회로 도약하자고 한다.
근본적 변화란 무엇인가? 어떤 게 근본적으로 변화한 세상인가? 계간 농정연구 제76호는 뉴딜 시대, 농촌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상상하기 위해 기획됐다. 먼저 <농촌사회 대변혁과 미래>라는 주제로 두 개의 특집을 준비했다. 첫 번째 특집은 지난 해 12월 2일 열린 농정연구센터 창립 27주년 기념 심포지엄의 지상중계로 꾸몄다. 기조발제와 대담으로 구성된 심포지엄의 주요 내용을 ‘농촌사회 대변혁을 꿈꾼다’라는 통합주제로 묶고 다섯 편의 글을 실었다.
첫 번째 글인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이날의 기조 발제를 풀어쓴 것이다. 마강래는 베이비부머의 귀향에서 농촌의 미래를 조망한다. 베이비부머가 쇠락해 가는 지방 도시, 농촌을 살릴 주역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1955년부터 1974년까지 사이에 태어난 (광의의) 베이비붐 세대는 현재 대한민국 인구 3분의 1을 차지한다. 약 1,700만 명에 달하는 거대 인구층의 노령화와 대거 은퇴는 시한폭탄과 같다. 연금 고갈,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갈등, 의료시설 부족 등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만들어낼 온갖 사회적 난제가 코앞에 닥쳐있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의 미래가 베이비부머 정책에 달려 있다’고 강변한다. ‘신중년(新中年)’으로 불리는 베이비부머의 탈도시화를 적극 지원하고, 농촌의 활력과 연계시키는 도농 상생의 귀촌·귀향 정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차세대 농촌을 규정할 핵심 이슈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과 의견이 있겠으나, 이번 심포지엄에서 우리는 네 가지 키워드에 주목했다. ‘기후위기’, ‘재생에너지’, ‘푸드플랜’, ‘지역농협’이 그것이다. 각 키워드를 둘러싼 논의와 쟁점은 <대담>이라는 형식을 빌어 정리했다. 농촌 현장을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묻고 중견의 전문가들이 답하는 방식으로 풀어썼는데, 일반시민의 눈높이에서 각 이슈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위해서였다. <기후위기 대응, 미래 농정의 대전제>, <에너지 전환, 농촌의 새로운 미래>, <푸드플랜, 지역순환경제의 초석>, <지역농협이 변해야 농촌이 산다>는 제목들은 이들 이슈를 바라보는 대담자들의 입장을 잘 드러내고 있다.
두 번째 특집은 농정연구센터 신년 세미나를 정리했다. 지난 1월 22일 늦은 오후, 덕수궁 옆 모임공간 상연재(相緣齋)에서 농정연구센터 임직원이 온오프믹스 세미나에 모였다. 두 개의 발제와 토론을 통해 2021년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일을 찾고자 했다. 먼저, 이일영은 <2021년 한국 사회의 쟁점과 과제>를 정리했다. 2021년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2021년에 주요하게 제기될 쟁점을 전망하면서, 도시와 농촌이 연결된 ‘자력(自力)경제’라는 관점에서 미래를 조망해보자고 제안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는 매년 10대 농정 이슈를 선정하고 있다. 이명기는 그를 압축해 5대 농정 이슈로 소개했다. ‘농촌재생’, ‘농업부문 탄소중립계획’, ‘국가식량계획’, ‘선택형 공익직불’, ‘스마트농업’이 그것이다. 두 발제에 이어진 전문가들의 논의는 <종합토론>으로 정리했다.
이번 호의 <현장>에는 농촌에서 이뤄지는 청년 정책과 관련해 두 편의 글을 실었다. 모두 지난 해 12월 3일 열린 ‘2021 지속가능농정포럼’에서 발표된 내용을 풀어 옮긴 글이다. 첫 번째 글은 남궁 희의 ‘청년, 숲에서 기회를 찾다’이다. 발표자가 참여해 추진한 ‘산촌거점권역육성사업’을 소개하고 있다. 이 사업의 목표는 “산림자원을 활용한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 청년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을 만들자”는 것인데, 필자가 속한 지역활성화센터에서 추진한 프로젝트는 도시 청년들의 열흘 산촌살이였다. 20명의 도시 청년들이 인제군 상남면과 기린면의 4개 마을에서 열흘 동안 주민으로 살아보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마을과 청년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관계를 맺는 과정이 그 어떤 물리적 지원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관점에서, 산촌 주민들과 도시 청년들이 서로의 삶과 문화를 생생하게 경험하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이 글은 그 과정을 지켜본 관찰자의 기록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김주영의 ‘청(소)년, 지역에서 길을 찾다’라는 글이다. 전북 완주군에서 지역과 청년을 어떻게 연결하고, 지역과 청년이 어떻게 하면 상생하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지, 완주군 청년정책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발표자의 경험을 진솔하게 전하고 있다. 김주영은, 농촌의 청년정책은 도시나 중앙정부의 청년정책과 달라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지역사회 문화가 청년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먼저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앞으로는 물론이고 지금 당장 커다란 쟁점이 되는 내용을 다루는 <이슈> 코너에서는 농업노동력, 농사용 전기, 영농형 태양광과 관련한 네 편의 글을 실었다.
농업노동력은 농정연구센터에서 주목하는 핵심 이슈의 하나로서 현장의 실태를 지속적으로 추적·조사하고 있다. 장민기는 2011년부터 4~5년 주기로 농업 현장의 노동력 운용 실태를 추적해왔는데, 이번 글 <농업노동력 운용 실태와 과제>는 작년 여름에 이뤄진 노지채소 전문작업단, 시설과채류 외국인 상근인력, 지역인력소개소 대상 조사를 바탕으로 쓰였다. 지난 10년 간의 변화를 보면, 이제 인력 부족은 ‘절체절명의 상황’에까지 이른 것 같다는 게 필자의 진단이다. 농작업에 참여하는 농업인력 풀(pool)이 절대적으로 감소해 그야말로 ‘사람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게다. 이제 정말 장기적인 시야에서 우리 농업의 구조적 변화를 직시하고 실천가능한 대안들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전기요금 개편이 필수다. 정부는 전기요금체계 개편에 나섰다. 이에 대해 농민단체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농사용 전기요금이 오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농사용 전기는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 인가? 조성호의 <농사용 전기요금 논란에 부쳐>는 이 문제를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이다. 온실에서 화훼를 재배하면서 관람용 식물원도 운영하는 충남의 한 영농조합법인이 연루된 소송사건을 통해 농사용 전기요금과 관련해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농촌 태양광 논란이 최근 영농형 태양광으로 번지고 있다. 가장 첨예한 쟁점은 농업진흥구역 내 설치 허용 여부다. 지난 1월 11일, 농업진흥구역에 영농형 태양광 시설 설치를 허용하는 농지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다. 이미 예견된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영농형 태양광에 관련한 두 편의 글을 이번 호 이슈로 준비했다. 하나는, 임송택의 <영농형 태양광,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글이다. 지난해 12월 8일 농정연구센터 제324회 세미나에서 발표한 글을 수정·보완해 실었다. 필자는, 국내외 추진사례 소개와 함께 핵심 쟁점이 되는 농지 보전 문제, 생산량 하락 문제, 농민 참여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글 말미에는 농민단체, 농정당국, 전문가들의 토론 내용도 함께 실었다. 두번째 글은, 영농형 태양광 시스템을 알기 쉽게 해설한 글이다. 영농형 태양광이 언제 왜 시작됐고, 어떤 사례가 있으며, 어떤 과제를 안고 있는지 소개한 글을 번역해서 실었다.
정말 길고 힘든 한해를 보내면서 사람들은 사회경제구조의 근본적 전환을 얘기한다. 농업·농촌의 변화를 얘기하는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농정 틀의 근본 전환을 말한다. 그런데 정작 근본적 변화가 어떻게 가능한지는 잘 말하지 않는다. 어떤 변화가 근본적 변화인지, 어떻게 그런 변화에 도달할 수 있는지, 치열하게 토론하고 준비하는 일은 매번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늘 자기이해에 기반한 자기주장의 목소리만 크다. 치열한 반성과 토론, 엄격한 성찰은 뒷전으로 밀리고 내 잘못보다는 네 잘못이 더 크다는 주장과 싸움만 난무한다. 이 지면을 통해 누누이 강조해온 바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비전이고, 그 비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어떤 농업, 어떤 농촌, 어떤 먹거리여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누가 어떻게 그러한 전환의 길을 열어가야 하는지, 큰 방향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 너나없이 농정대전환을 얘기하지만, 어떤 전환인지 담대한 목표와 결기가 빠져있다. 아직까지는 합의보다 정쟁과 비난이 앞서고, 공적 가치보다는 사적 이익이 우선된다. 이런 상태를 넘어서지 못하면 한치의 변화도 쉽지 않다. 오히려 혼돈과 분열의 파국으로 치닫게 될지 모른다.
2020년도 그랬지만 2021년의 정국은 유달리 더 어수선해질 것 같다. 지방선거와 대선이 코앞에 닥친 탓이다. 혼돈과 분열을 넘어 사회적 통합을 이루려면 새로운 정치의 시대가 열려야 한다. 이익이 되건말건 인류에게 유익한 일인지 여부만으로 판단하도록 생각의 기준이 달라져야하며, 인류가 계속 공적 영역으로 남겨야 할 부분들을 지키고 함께 나누려는 노력이 존중돼야 한다. 체제와 제도를 누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모양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 우리 농촌의 미래가 바뀐다. 그래서 정부와 정책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구체적인 비전과 정책으로 얘기하는 새로운 정치가 절실하다.
발간일 : 2021년 1월 31일 분량 : 222쪽
[책머리에] 전혀 다른 사회를 상상하자 / 황수철(농정연구센터 이사장)
깊은 잠에 빠져 모든 걸 잊고 싶은 때가 있다. 유난히도 길고 힘든 일이 끝모르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2020년이 꼭 그랬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평범했던 일상이 한순간에 멈춰버렸다.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는 비극적 상황이 언제 끝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 사람들이 사람들을 피해야 하고, 살림살이는 더 어려워지기만하고, 유달리 큰 재난이 끊이지 않는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인류가 그동안 만들어온 시스템의 한계를 민낯으로 드러냈다.
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여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소띠 해, 사람들은 기대와 희망을 말한다. 그리고 일상의 회복을 얘기한다. 아마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일 게다. 정말 돌아갈 수 있을까? 회복은 바람직할까? 어디로 돌아간다는 걸까? 위기 이전,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은 아름다웠을까?
어느 순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마스크와 거리두기, 온라인 학교, 온라인 회의, 온라인 거래가 일상이 됐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했다. 어느 칼럼니스트 말처럼 세상은 코로나 이전(BC)과 코로나 이후(AC)로 나뉠지 모른다. 코로나 이전 시대의 가치와 표준은 점점 무의미해졌다. 노멀(normal)이라 믿었던 질서는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가치와 표준(new normal)의 시대가 왔다. 그에 맞춰 일상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한다. 이제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아니, 과거와 똑같은 형태로 돌아가서는 절대 좋은 삶을 구현할 수 없다. 사람들은 이제 깨닫기 시작했다. 자연 존중의 자세 없이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걸, 내 이웃의 안전이 곧 나의 안전이라는 걸, 그래서 남들과의 연대와 협력이 옳은 결정이라는 걸 알아채기 시작했다. 그게 코로나19가 우리 인류에게 준 커다란 교훈이다.
이제 필요한 건 뭘까? 일상의 회복은 중요하지만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위기 이전으로 단순히 돌아간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과거의 방식으로는 해답을 구할 수 없다. 새로운 삶의 방식, 삶의 구조적 전환 없이 미래를 얘기할 수 없다. 당장 필요한 건, 전혀 다른 사회를 상상하고, 곧바로 실천에 옮기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뉴딜을 얘기한다. 아주 심각한 위기를 전혀 다른 사회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은 사례로서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뉴딜에 주목하고 한국판 뉴딜을 주창한다. 뉴딜정책으로 사회구조가 바뀐 미국이 새로운 번영의 시기를 맞이한 것처럼, 우리도 지금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회로 도약하자고 한다.
근본적 변화란 무엇인가? 어떤 게 근본적으로 변화한 세상인가? 계간 농정연구 제76호는 뉴딜 시대, 농촌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상상하기 위해 기획됐다. 먼저 <농촌사회 대변혁과 미래>라는 주제로 두 개의 특집을 준비했다. 첫 번째 특집은 지난 해 12월 2일 열린 농정연구센터 창립 27주년 기념 심포지엄의 지상중계로 꾸몄다. 기조발제와 대담으로 구성된 심포지엄의 주요 내용을 ‘농촌사회 대변혁을 꿈꾼다’라는 통합주제로 묶고 다섯 편의 글을 실었다.
첫 번째 글인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이날의 기조 발제를 풀어쓴 것이다. 마강래는 베이비부머의 귀향에서 농촌의 미래를 조망한다. 베이비부머가 쇠락해 가는 지방 도시, 농촌을 살릴 주역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1955년부터 1974년까지 사이에 태어난 (광의의) 베이비붐 세대는 현재 대한민국 인구 3분의 1을 차지한다. 약 1,700만 명에 달하는 거대 인구층의 노령화와 대거 은퇴는 시한폭탄과 같다. 연금 고갈,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갈등, 의료시설 부족 등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만들어낼 온갖 사회적 난제가 코앞에 닥쳐있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의 미래가 베이비부머 정책에 달려 있다’고 강변한다. ‘신중년(新中年)’으로 불리는 베이비부머의 탈도시화를 적극 지원하고, 농촌의 활력과 연계시키는 도농 상생의 귀촌·귀향 정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차세대 농촌을 규정할 핵심 이슈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과 의견이 있겠으나, 이번 심포지엄에서 우리는 네 가지 키워드에 주목했다. ‘기후위기’, ‘재생에너지’, ‘푸드플랜’, ‘지역농협’이 그것이다. 각 키워드를 둘러싼 논의와 쟁점은 <대담>이라는 형식을 빌어 정리했다. 농촌 현장을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묻고 중견의 전문가들이 답하는 방식으로 풀어썼는데, 일반시민의 눈높이에서 각 이슈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위해서였다. <기후위기 대응, 미래 농정의 대전제>, <에너지 전환, 농촌의 새로운 미래>, <푸드플랜, 지역순환경제의 초석>, <지역농협이 변해야 농촌이 산다>는 제목들은 이들 이슈를 바라보는 대담자들의 입장을 잘 드러내고 있다.
두 번째 특집은 농정연구센터 신년 세미나를 정리했다. 지난 1월 22일 늦은 오후, 덕수궁 옆 모임공간 상연재(相緣齋)에서 농정연구센터 임직원이 온오프믹스 세미나에 모였다. 두 개의 발제와 토론을 통해 2021년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일을 찾고자 했다. 먼저, 이일영은 <2021년 한국 사회의 쟁점과 과제>를 정리했다. 2021년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2021년에 주요하게 제기될 쟁점을 전망하면서, 도시와 농촌이 연결된 ‘자력(自力)경제’라는 관점에서 미래를 조망해보자고 제안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는 매년 10대 농정 이슈를 선정하고 있다. 이명기는 그를 압축해 5대 농정 이슈로 소개했다. ‘농촌재생’, ‘농업부문 탄소중립계획’, ‘국가식량계획’, ‘선택형 공익직불’, ‘스마트농업’이 그것이다. 두 발제에 이어진 전문가들의 논의는 <종합토론>으로 정리했다.
이번 호의 <현장>에는 농촌에서 이뤄지는 청년 정책과 관련해 두 편의 글을 실었다. 모두 지난 해 12월 3일 열린 ‘2021 지속가능농정포럼’에서 발표된 내용을 풀어 옮긴 글이다. 첫 번째 글은 남궁 희의 ‘청년, 숲에서 기회를 찾다’이다. 발표자가 참여해 추진한 ‘산촌거점권역육성사업’을 소개하고 있다. 이 사업의 목표는 “산림자원을 활용한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 청년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을 만들자”는 것인데, 필자가 속한 지역활성화센터에서 추진한 프로젝트는 도시 청년들의 열흘 산촌살이였다. 20명의 도시 청년들이 인제군 상남면과 기린면의 4개 마을에서 열흘 동안 주민으로 살아보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마을과 청년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관계를 맺는 과정이 그 어떤 물리적 지원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관점에서, 산촌 주민들과 도시 청년들이 서로의 삶과 문화를 생생하게 경험하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이 글은 그 과정을 지켜본 관찰자의 기록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김주영의 ‘청(소)년, 지역에서 길을 찾다’라는 글이다. 전북 완주군에서 지역과 청년을 어떻게 연결하고, 지역과 청년이 어떻게 하면 상생하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지, 완주군 청년정책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발표자의 경험을 진솔하게 전하고 있다. 김주영은, 농촌의 청년정책은 도시나 중앙정부의 청년정책과 달라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지역사회 문화가 청년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먼저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앞으로는 물론이고 지금 당장 커다란 쟁점이 되는 내용을 다루는 <이슈> 코너에서는 농업노동력, 농사용 전기, 영농형 태양광과 관련한 네 편의 글을 실었다.
농업노동력은 농정연구센터에서 주목하는 핵심 이슈의 하나로서 현장의 실태를 지속적으로 추적·조사하고 있다. 장민기는 2011년부터 4~5년 주기로 농업 현장의 노동력 운용 실태를 추적해왔는데, 이번 글 <농업노동력 운용 실태와 과제>는 작년 여름에 이뤄진 노지채소 전문작업단, 시설과채류 외국인 상근인력, 지역인력소개소 대상 조사를 바탕으로 쓰였다. 지난 10년 간의 변화를 보면, 이제 인력 부족은 ‘절체절명의 상황’에까지 이른 것 같다는 게 필자의 진단이다. 농작업에 참여하는 농업인력 풀(pool)이 절대적으로 감소해 그야말로 ‘사람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게다. 이제 정말 장기적인 시야에서 우리 농업의 구조적 변화를 직시하고 실천가능한 대안들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전기요금 개편이 필수다. 정부는 전기요금체계 개편에 나섰다. 이에 대해 농민단체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농사용 전기요금이 오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농사용 전기는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 인가? 조성호의 <농사용 전기요금 논란에 부쳐>는 이 문제를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이다. 온실에서 화훼를 재배하면서 관람용 식물원도 운영하는 충남의 한 영농조합법인이 연루된 소송사건을 통해 농사용 전기요금과 관련해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농촌 태양광 논란이 최근 영농형 태양광으로 번지고 있다. 가장 첨예한 쟁점은 농업진흥구역 내 설치 허용 여부다. 지난 1월 11일, 농업진흥구역에 영농형 태양광 시설 설치를 허용하는 농지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다. 이미 예견된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영농형 태양광에 관련한 두 편의 글을 이번 호 이슈로 준비했다. 하나는, 임송택의 <영농형 태양광,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글이다. 지난해 12월 8일 농정연구센터 제324회 세미나에서 발표한 글을 수정·보완해 실었다. 필자는, 국내외 추진사례 소개와 함께 핵심 쟁점이 되는 농지 보전 문제, 생산량 하락 문제, 농민 참여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글 말미에는 농민단체, 농정당국, 전문가들의 토론 내용도 함께 실었다. 두번째 글은, 영농형 태양광 시스템을 알기 쉽게 해설한 글이다. 영농형 태양광이 언제 왜 시작됐고, 어떤 사례가 있으며, 어떤 과제를 안고 있는지 소개한 글을 번역해서 실었다.
정말 길고 힘든 한해를 보내면서 사람들은 사회경제구조의 근본적 전환을 얘기한다. 농업·농촌의 변화를 얘기하는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농정 틀의 근본 전환을 말한다. 그런데 정작 근본적 변화가 어떻게 가능한지는 잘 말하지 않는다. 어떤 변화가 근본적 변화인지, 어떻게 그런 변화에 도달할 수 있는지, 치열하게 토론하고 준비하는 일은 매번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늘 자기이해에 기반한 자기주장의 목소리만 크다. 치열한 반성과 토론, 엄격한 성찰은 뒷전으로 밀리고 내 잘못보다는 네 잘못이 더 크다는 주장과 싸움만 난무한다. 이 지면을 통해 누누이 강조해온 바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비전이고, 그 비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어떤 농업, 어떤 농촌, 어떤 먹거리여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누가 어떻게 그러한 전환의 길을 열어가야 하는지, 큰 방향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 너나없이 농정대전환을 얘기하지만, 어떤 전환인지 담대한 목표와 결기가 빠져있다. 아직까지는 합의보다 정쟁과 비난이 앞서고, 공적 가치보다는 사적 이익이 우선된다. 이런 상태를 넘어서지 못하면 한치의 변화도 쉽지 않다. 오히려 혼돈과 분열의 파국으로 치닫게 될지 모른다.
2020년도 그랬지만 2021년의 정국은 유달리 더 어수선해질 것 같다. 지방선거와 대선이 코앞에 닥친 탓이다. 혼돈과 분열을 넘어 사회적 통합을 이루려면 새로운 정치의 시대가 열려야 한다. 이익이 되건말건 인류에게 유익한 일인지 여부만으로 판단하도록 생각의 기준이 달라져야하며, 인류가 계속 공적 영역으로 남겨야 할 부분들을 지키고 함께 나누려는 노력이 존중돼야 한다. 체제와 제도를 누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모양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 우리 농촌의 미래가 바뀐다. 그래서 정부와 정책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구체적인 비전과 정책으로 얘기하는 새로운 정치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