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지난 4년은 유난히 격동적이었다. 출발부터 비상했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역사의 부름을 받았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혁명정부였다. 그만큼 개혁 완수의 부담이 컸다. ‘포용’과 ‘혁신’의 가치로 미래를 구상하는 가운데, 엄청난 쓰나미가 몰려와 부담이 한층 커졌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도전과제가 임기 후반을 괴롭혔다. 국민들은 잘 헤쳐가리라 기대했다. 적폐도 잘 청산하고 닥친 위기도 슬기롭게 극복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인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구질서의 타파보다 신질서의 수립이 더 어려웠다. 결국 새 시대를 열어달라는 촛불혁명의 염원은 정권교체, 여야교체에 그치고 말았다. 시대교체, 세대교체는 없었다.
농정개혁은 어떤가? ‘농정 틀의 근본 전환’을 표방했지만, 과연 그런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가? 개혁을 추진하는 입장과 개혁을 고대하는 입장 사이에 간극이 너무 크다. 정부는 ‘도전과 혁신의 4년’이라며 자랑거리를 여럿 내세우지만, 농민(단체)들은 ‘무책임과 불통의 4년’이었다고 혹평한다. 양 측의 전혀 엇갈리는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어줄 만큼 순진하지는 않다. 공(功)만 있거나 과(過)만 있을 정도로 세상 이치가 한가하지 않다. 공은 공대로 인정하되 과를 바로잡아 남은 시간을 잘 마무리하면 될 일이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면 반성과 복기가 종요롭다. 지난 4년의 농정을 평가해보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농정개혁을 온전히 평가하기는 어렵다. 이 정부가 중요하게 내세운 핵심 개혁 의제를 중간점검하는 게 현실적이다. 어떻게 평가할지도 중요하다. 우리의 선택은, 개혁 의제의 논의와 실행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이다. 그래서 좌담의 형식을 빌었다. 네 차례의 특별좌담회를 열어 문재인 정부의 농정개혁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의견을 물었다.
1 차 좌담은 6월 2일 열렸다. 김태훈, 이명헌, 이태호, 황수철이 참석해 총평과 함께 농업정책 개혁을 얘기했다. 이른바 ‘직불 중심 농정으로의 전환’을 평가해보기 위함이다. 이 자리에서는 먼저, 새로운 농정이 가야할 방향과 전략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되짚었다. 개혁 추진의 흐름을 시간대별로 돌아보고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살폈다. 주목할 이슈는 개혁과정을 관리·조정하는 리더십의 문제가 개혁 성패의 관건적 요인이라는 문제제기다.
이어서 총평 시간을 가졌다. “지속가능농정으로의 근본 전환을 표방했지만 실행/실천이 미약했고 추진역량이 부족했다”는 게 모두 공감하는 결론이다. 그 주된 이유로는 개혁 리더십의 한계, 개혁 의지의 부족, 정당의 취약성과 관료기구의 높은 벽, 충분한 준비 없는 조급한 추진 등이 지적됐다.
한편,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가장 중요한 개혁 조치가 공익직불제 도입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다만, 그에 대한 평가는 엄격했다. 직불제 개편으로 이행조건(cross-compliance)을 도입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지만 그 조건 자체가 너무 약할 뿐 아니라 관리·집행할 제도적·물적 인프라도 취약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아울러 소농직불제의 부작용, 선택형 직불제 확충의 한계도 지적했다.
직불제 중심 농정 전환의 핵심요소인 공익직불제가 안착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는 농업경영체DB의 정비·강화, 선택형 직불제 정립과 예산의 재배분·확보 방안 마련이 강조됐다. 이와 함께 미래 대응 전략도 논의했다. 중시해야 할 도전과제로 기후위기 극복, 고령화/인력부족 대응이 우선 꼽혔다. 이와 관련해 다음 정부가 꼭 추진해야 할 핵심 의제로는 세제개혁, 혁신가(앙뜨르뿌르누어) 양성, 스마트농업의 재정립이 제시됐다.
6월 17일 열린 2차 좌담의 주제는 농촌정책의 평가였다. 구자인, 성주인, 오형은, 이유직, 황수철이 모였다. 이 정부 농정에 대한 총평은 1차 좌담의 결론과 비슷했다. 겉으로 내세우는 것과 실제의 실천 사이에 괴리가 크다는 것이다. 특히, 농촌정책에서 그런 측면이 두드러졌는데, 패러다임의 전환을 표방한 정책이 오히려 현장의 혼란만 초래했다고 꼬집는다.
조금 더 짚어보자. 참석자들이 꼽은 이 정부 농촌정책의 주요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사람을 중시하고 지역의 역량강화를 강조한 정책의 추진이다. 신활력플러스사업이 대표적이다. 둘째, 농촌공간계획의 도입이다. 작년 농업인의날 대통령이 밝힌 ‘농촌르네상스 프로젝트’의 핵심전략으로 제시되면서 농식품부에서도 각별히 중시하는 정책이다. 농촌공간을 계획적/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동시에, 지자체와 주민이 지역 실정에 맞는 사업을 스스로 발굴해 추진토록 한다는 구상이다. 셋째, 정책 시행 방식의 변화를 꾀한 점이다. 이른바 ‘협약’ 제도의 도입이다. 농식품부의 농촌협약, 국토부의 지역발전투자협약 등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협약’을 정책과 사업의 실행수단으로 삼고자 했다.
이 세 가지 모두 훌륭한 명분을 갖춘 제도들이다. 허나 문제는 역시 실행이다. 특히, 농촌공간계획과 농촌협약제도의 시범사업이 제도 도입의 취지와 전혀 달리 추진되는 게 문제다. 두 제도 모두 지방정부의 자율성과 창의성 발휘가 관건적 요소인데, 실제 제도의 운영과정에서는 그러한 방향 전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중앙정부의 강한 주도성이라는 낡은 방식이 문제라는 게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무리하게 추진하면 역효과만 불러올 뿐이다. 그래서 농촌협약이라는 이름은 농촌공간계획사업 정도로 부르는 게 마땅하다는 정명(正名)의 요구도 등장한다.
하지만 농촌공간계획과 농촌협약을 본래 취지대로 정립해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참석자들이 내놓은 다양한 아이디어들, 가령 마을-기초지자체-광역지자체-중앙정부의 각 층위별 역할분담의 명확화, 지자체 차원의 정책추진체계 정비(총괄조정부서 설치, 순환보직제 단점 극복 등), 읍면 단위 발전계획의 시범수립 지원, 농촌활동가들 대상의 심화교육 실시, 사회실험 방식의 프로젝트 활성화 등이 돌파구를 마련할 지도 모르겠다.
7월 8일의 좌담은 먹거리정책을 평가하는 자리였다. 길청순, 문은숙,황영모, 황수철이 모여 국가푸드플랜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국가푸드플랜 수립은 대선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다. ‘농정틀 전환을 위한 2019 타운홀미팅 보고대회’와 ‘2020농업인의날’에서 대통령이 직접 강조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정부가 중시한 개혁과제의 하나다. 그런데 그만큼 어려운 숙제이기도 하다. 먹거리를 다루는 여러 부처, 매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조정·조율이라는 난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푸드플랜 수립은 거버넌스기구인 농특위의 주도로 추진됐다. 약 2년 동안의 우여곡절 끝에 금년 3월 본위원회 의결을
거쳐 ‘국가식량계획’이라는 이름으로 확정된다.
어렵게 만들어진 이 계획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안팎으로 곤란한 처지에 놓인 것 같다. 무엇보다 정명(正名)의 문제가 있다. 푸드플랜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이해관계자들의 참여와 합의에 기반한 계획’이라고 보기 어렵다. 소비자, 식품산업 등 정작 핵심적인 이해관계자가 사실상 배제된 반쪽짜리 계획이다. 관계부처와의 실질적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탓에 부처의 반응도 부정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농특위 내부의 반발도 크다. 계획 수립에 함께 참여한 이른바 ‘먹거리 진영’의 요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이유다. 이들은 ‘식량’계획은 진정한 ‘먹거리’계획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국가식량계획은 자칫 농식품부만의 계획으로 축소되고 페이퍼플랜으로 사장될 우려마저 제기되는 대목이다. 그래서 참석자들은 이번에 만들어진 국가식량계획의 성격을 녹서(綠書, green paper)로 규정하자고 제안한다. 최종 확정된 정책이라기보다는 그런 결정을 하기에 앞서 사회 전체의 토론을 요청하는 제안서(일종의 심의용 시안문서)로 의미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고, 과학적 예측과 이해관계자의 입장과 관점을 고려하며, 실제로 작동 가능한 수준의 추진체계와 실행전략을 갖춘 명실상부한 국가먹거리계획을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디딤돌로 이번 국가식량계획을 자리매김하자는 것이다.
이상의 농업·농촌·먹거리 부문의 정책과 함께 스마트농업도 평가 대상 정책의 하나로 뽑고 6월 23일 좌담회를 가졌다. 스마트농업은 이전 정부 때부터 중요하게 다뤄졌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도 ‘혁신성장’의 일환으로 특별히 강조됐기 때문이다. 이날 좌담회는 남재작의 ‘문재인 정부 스마트농업정책의 성과와 과제’라는 발제로 시작해 연구와 실천 현장의 전문가들(박흔동, 신상훈, 이주량, 조용빈)이 난상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발제자는, 문재인 정부의 스마트농업정책으로 디지털농업의 혁신과 성장 기반이 갖춰졌다고 평가한다. 청년들의 농업에 대한 관심을 키운점, 국민들에게 스마트농업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널리 알리게 된 점을 성과로 본다. 반면, 스마트농업이 확산하는 데 꼭 필요한 농업계의 인식 개선과 제도 혁신을 이루지 못한 점은 한계라고 지적한다. 특히, 디지털농업 전환에 걸맞은 지원조직, 사업화방식, R&D혁신 등의 제도개혁이 거의 이뤄지지 못한 점을 꼬집는다. 그리고 국가의 농업데이터 플랫폼사업에 대해서도 소규모 실증사업 수준의 추진방식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이런 문제들을 풀어가려면, 우선 농업의 디지털 전환 전략을 수립할 민관협의체 출범과 스마트농업 추진을 위한 통합콘트롤타워가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디지털농업 R&D와 전략 수립을 주도할 연구기관이나 사업화전문기관을 설립해 빅데이터 관리와 운영을 책임성 있게 추진하라고 주문한다. 나아가서는 R&D 체계를 실증사업으로 재편할 것을 제안한다. 개별 기술개발에 치중하는 방식의 접근이 아니라 현장의 문제해결 중심의 시스템을 갖추라는 요구다.
발제에 이은 토론에서는 문제해결형 접근전략의 가능성, 정부와 시장의 역할분담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지금처럼 정부, 연구기관, 시장이 같은 일에 중복적으로 매달리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과 현 정부의 역점사업인 다부처 스마트팜 패키지 사업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이와 함께 다음 정부가 해야 할 일도 논의했다. 우리나라 스마트농업의 미래가 밝다는 전망과 함께 한층 더 공격적인 제도개선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특집의 좌담 원고가 길어지면서 이번 호의 지면이 줄었다. 논단과 이슈로 기획한 원고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현장란에 세 편의 글을 싣는 데 만족했다. 모두 시골살이를 전하는 글들이다. 두 편은 도시를 떠난 청년들의 시골살이를 그린다. 귀농은 로망이 아닌 현실이다. 세칭 ‘금수저’ 승계농의 성공담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얘기다. 박시연의 ‘촌(村)스럽게 살아가기’는 그래서 절절하게 다가온다. 요즘은 귀농보다 귀촌을 택하는 도시청년들이 많다. 서동선의 ‘시골 스타트업, 팜앤디’는 디지털세대가 농촌을 찾아 어떤 미래를 열어가는지 보여준다. 농촌주민들, 특히 노인과 청소년들의 여가생활을 생각해본 적이 있나? 이준우는 색다른 주제로 농촌의 삶을 비춰본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고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절로 바뀌는 법은 없다. 길은 스스로 열어야 한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이유는 미래로 나아가는 디딤돌을 다지기 위함이다. 문재인 정부 농정 평가는 새로운 길을 전망하는 데 유력한 방편이 될 수 있다. 다음 정부의 미래구상을 탐지하기 위해서라도 현 정부의 갈지자 행보를 복기하는 작업은 긴요하다. 성장 중심의 생산주의농정은 설 자리를 잃었다. 지속가능농정이 미래의 길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에 대한 의심의 눈길이 많고 두려움도 강하다. 구태(舊態)의 끝자락에 매달려 미래로 나아가기를 거부하는 저항도 거세다. 돌아보니 반성할 일이 너무 많다. 무엇이 정작 중요한 일인지 놓친 게 많다. 표류(表流)에 휩쓸려 저 밑의 도저한 복류(伏流)를 주시하는 데 게을렀다. 근본을 천착하지 않으면 말단의 오류가 거듭되는 법이다. 다시 새긴다. 근본의 성찰 없이 미래는 없다.
발간일 : 2021년 7월 30일 분량 : 225쪽
[책머리에] 성찰 없이 미래 없다 / 황수철 (농정연구센터 이사장)
문재인 정부의 지난 4년은 유난히 격동적이었다. 출발부터 비상했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역사의 부름을 받았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혁명정부였다. 그만큼 개혁 완수의 부담이 컸다. ‘포용’과 ‘혁신’의 가치로 미래를 구상하는 가운데, 엄청난 쓰나미가 몰려와 부담이 한층 커졌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도전과제가 임기 후반을 괴롭혔다. 국민들은 잘 헤쳐가리라 기대했다. 적폐도 잘 청산하고 닥친 위기도 슬기롭게 극복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인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구질서의 타파보다 신질서의 수립이 더 어려웠다. 결국 새 시대를 열어달라는 촛불혁명의 염원은 정권교체, 여야교체에 그치고 말았다. 시대교체, 세대교체는 없었다.
농정개혁은 어떤가? ‘농정 틀의 근본 전환’을 표방했지만, 과연 그런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가? 개혁을 추진하는 입장과 개혁을 고대하는 입장 사이에 간극이 너무 크다. 정부는 ‘도전과 혁신의 4년’이라며 자랑거리를 여럿 내세우지만, 농민(단체)들은 ‘무책임과 불통의 4년’이었다고 혹평한다. 양 측의 전혀 엇갈리는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어줄 만큼 순진하지는 않다. 공(功)만 있거나 과(過)만 있을 정도로 세상 이치가 한가하지 않다. 공은 공대로 인정하되 과를 바로잡아 남은 시간을 잘 마무리하면 될 일이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면 반성과 복기가 종요롭다. 지난 4년의 농정을 평가해보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농정개혁을 온전히 평가하기는 어렵다. 이 정부가 중요하게 내세운 핵심 개혁 의제를 중간점검하는 게 현실적이다. 어떻게 평가할지도 중요하다. 우리의 선택은, 개혁 의제의 논의와 실행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이다. 그래서 좌담의 형식을 빌었다. 네 차례의 특별좌담회를 열어 문재인 정부의 농정개혁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의견을 물었다.
1 차 좌담은 6월 2일 열렸다. 김태훈, 이명헌, 이태호, 황수철이 참석해 총평과 함께 농업정책 개혁을 얘기했다. 이른바 ‘직불 중심 농정으로의 전환’을 평가해보기 위함이다. 이 자리에서는 먼저, 새로운 농정이 가야할 방향과 전략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되짚었다. 개혁 추진의 흐름을 시간대별로 돌아보고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살폈다. 주목할 이슈는 개혁과정을 관리·조정하는 리더십의 문제가 개혁 성패의 관건적 요인이라는 문제제기다.
이어서 총평 시간을 가졌다. “지속가능농정으로의 근본 전환을 표방했지만 실행/실천이 미약했고 추진역량이 부족했다”는 게 모두 공감하는 결론이다. 그 주된 이유로는 개혁 리더십의 한계, 개혁 의지의 부족, 정당의 취약성과 관료기구의 높은 벽, 충분한 준비 없는 조급한 추진 등이 지적됐다.
한편,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가장 중요한 개혁 조치가 공익직불제 도입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다만, 그에 대한 평가는 엄격했다. 직불제 개편으로 이행조건(cross-compliance)을 도입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지만 그 조건 자체가 너무 약할 뿐 아니라 관리·집행할 제도적·물적 인프라도 취약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아울러 소농직불제의 부작용, 선택형 직불제 확충의 한계도 지적했다.
직불제 중심 농정 전환의 핵심요소인 공익직불제가 안착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는 농업경영체DB의 정비·강화, 선택형 직불제 정립과 예산의 재배분·확보 방안 마련이 강조됐다. 이와 함께 미래 대응 전략도 논의했다. 중시해야 할 도전과제로 기후위기 극복, 고령화/인력부족 대응이 우선 꼽혔다. 이와 관련해 다음 정부가 꼭 추진해야 할 핵심 의제로는 세제개혁, 혁신가(앙뜨르뿌르누어) 양성, 스마트농업의 재정립이 제시됐다.
6월 17일 열린 2차 좌담의 주제는 농촌정책의 평가였다. 구자인, 성주인, 오형은, 이유직, 황수철이 모였다. 이 정부 농정에 대한 총평은 1차 좌담의 결론과 비슷했다. 겉으로 내세우는 것과 실제의 실천 사이에 괴리가 크다는 것이다. 특히, 농촌정책에서 그런 측면이 두드러졌는데, 패러다임의 전환을 표방한 정책이 오히려 현장의 혼란만 초래했다고 꼬집는다.
조금 더 짚어보자. 참석자들이 꼽은 이 정부 농촌정책의 주요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사람을 중시하고 지역의 역량강화를 강조한 정책의 추진이다. 신활력플러스사업이 대표적이다. 둘째, 농촌공간계획의 도입이다. 작년 농업인의날 대통령이 밝힌 ‘농촌르네상스 프로젝트’의 핵심전략으로 제시되면서 농식품부에서도 각별히 중시하는 정책이다. 농촌공간을 계획적/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동시에, 지자체와 주민이 지역 실정에 맞는 사업을 스스로 발굴해 추진토록 한다는 구상이다. 셋째, 정책 시행 방식의 변화를 꾀한 점이다. 이른바 ‘협약’ 제도의 도입이다. 농식품부의 농촌협약, 국토부의 지역발전투자협약 등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협약’을 정책과 사업의 실행수단으로 삼고자 했다.
이 세 가지 모두 훌륭한 명분을 갖춘 제도들이다. 허나 문제는 역시 실행이다. 특히, 농촌공간계획과 농촌협약제도의 시범사업이 제도 도입의 취지와 전혀 달리 추진되는 게 문제다. 두 제도 모두 지방정부의 자율성과 창의성 발휘가 관건적 요소인데, 실제 제도의 운영과정에서는 그러한 방향 전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중앙정부의 강한 주도성이라는 낡은 방식이 문제라는 게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무리하게 추진하면 역효과만 불러올 뿐이다. 그래서 농촌협약이라는 이름은 농촌공간계획사업 정도로 부르는 게 마땅하다는 정명(正名)의 요구도 등장한다.
하지만 농촌공간계획과 농촌협약을 본래 취지대로 정립해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참석자들이 내놓은 다양한 아이디어들, 가령 마을-기초지자체-광역지자체-중앙정부의 각 층위별 역할분담의 명확화, 지자체 차원의 정책추진체계 정비(총괄조정부서 설치, 순환보직제 단점 극복 등), 읍면 단위 발전계획의 시범수립 지원, 농촌활동가들 대상의 심화교육 실시, 사회실험 방식의 프로젝트 활성화 등이 돌파구를 마련할 지도 모르겠다.
7월 8일의 좌담은 먹거리정책을 평가하는 자리였다. 길청순, 문은숙,황영모, 황수철이 모여 국가푸드플랜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국가푸드플랜 수립은 대선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다. ‘농정틀 전환을 위한 2019 타운홀미팅 보고대회’와 ‘2020농업인의날’에서 대통령이 직접 강조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정부가 중시한 개혁과제의 하나다. 그런데 그만큼 어려운 숙제이기도 하다. 먹거리를 다루는 여러 부처, 매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조정·조율이라는 난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푸드플랜 수립은 거버넌스기구인 농특위의 주도로 추진됐다. 약 2년 동안의 우여곡절 끝에 금년 3월 본위원회 의결을
거쳐 ‘국가식량계획’이라는 이름으로 확정된다.
어렵게 만들어진 이 계획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안팎으로 곤란한 처지에 놓인 것 같다. 무엇보다 정명(正名)의 문제가 있다. 푸드플랜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이해관계자들의 참여와 합의에 기반한 계획’이라고 보기 어렵다. 소비자, 식품산업 등 정작 핵심적인 이해관계자가 사실상 배제된 반쪽짜리 계획이다. 관계부처와의 실질적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탓에 부처의 반응도 부정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농특위 내부의 반발도 크다. 계획 수립에 함께 참여한 이른바 ‘먹거리 진영’의 요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이유다. 이들은 ‘식량’계획은 진정한 ‘먹거리’계획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국가식량계획은 자칫 농식품부만의 계획으로 축소되고 페이퍼플랜으로 사장될 우려마저 제기되는 대목이다. 그래서 참석자들은 이번에 만들어진 국가식량계획의 성격을 녹서(綠書, green paper)로 규정하자고 제안한다. 최종 확정된 정책이라기보다는 그런 결정을 하기에 앞서 사회 전체의 토론을 요청하는 제안서(일종의 심의용 시안문서)로 의미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고, 과학적 예측과 이해관계자의 입장과 관점을 고려하며, 실제로 작동 가능한 수준의 추진체계와 실행전략을 갖춘 명실상부한 국가먹거리계획을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디딤돌로 이번 국가식량계획을 자리매김하자는 것이다.
이상의 농업·농촌·먹거리 부문의 정책과 함께 스마트농업도 평가 대상 정책의 하나로 뽑고 6월 23일 좌담회를 가졌다. 스마트농업은 이전 정부 때부터 중요하게 다뤄졌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도 ‘혁신성장’의 일환으로 특별히 강조됐기 때문이다. 이날 좌담회는 남재작의 ‘문재인 정부 스마트농업정책의 성과와 과제’라는 발제로 시작해 연구와 실천 현장의 전문가들(박흔동, 신상훈, 이주량, 조용빈)이 난상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발제자는, 문재인 정부의 스마트농업정책으로 디지털농업의 혁신과 성장 기반이 갖춰졌다고 평가한다. 청년들의 농업에 대한 관심을 키운점, 국민들에게 스마트농업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널리 알리게 된 점을 성과로 본다. 반면, 스마트농업이 확산하는 데 꼭 필요한 농업계의 인식 개선과 제도 혁신을 이루지 못한 점은 한계라고 지적한다. 특히, 디지털농업 전환에 걸맞은 지원조직, 사업화방식, R&D혁신 등의 제도개혁이 거의 이뤄지지 못한 점을 꼬집는다. 그리고 국가의 농업데이터 플랫폼사업에 대해서도 소규모 실증사업 수준의 추진방식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이런 문제들을 풀어가려면, 우선 농업의 디지털 전환 전략을 수립할 민관협의체 출범과 스마트농업 추진을 위한 통합콘트롤타워가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디지털농업 R&D와 전략 수립을 주도할 연구기관이나 사업화전문기관을 설립해 빅데이터 관리와 운영을 책임성 있게 추진하라고 주문한다. 나아가서는 R&D 체계를 실증사업으로 재편할 것을 제안한다. 개별 기술개발에 치중하는 방식의 접근이 아니라 현장의 문제해결 중심의 시스템을 갖추라는 요구다.
발제에 이은 토론에서는 문제해결형 접근전략의 가능성, 정부와 시장의 역할분담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지금처럼 정부, 연구기관, 시장이 같은 일에 중복적으로 매달리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과 현 정부의 역점사업인 다부처 스마트팜 패키지 사업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이와 함께 다음 정부가 해야 할 일도 논의했다. 우리나라 스마트농업의 미래가 밝다는 전망과 함께 한층 더 공격적인 제도개선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특집의 좌담 원고가 길어지면서 이번 호의 지면이 줄었다. 논단과 이슈로 기획한 원고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현장란에 세 편의 글을 싣는 데 만족했다. 모두 시골살이를 전하는 글들이다. 두 편은 도시를 떠난 청년들의 시골살이를 그린다. 귀농은 로망이 아닌 현실이다. 세칭 ‘금수저’ 승계농의 성공담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얘기다. 박시연의 ‘촌(村)스럽게 살아가기’는 그래서 절절하게 다가온다. 요즘은 귀농보다 귀촌을 택하는 도시청년들이 많다. 서동선의 ‘시골 스타트업, 팜앤디’는 디지털세대가 농촌을 찾아 어떤 미래를 열어가는지 보여준다. 농촌주민들, 특히 노인과 청소년들의 여가생활을 생각해본 적이 있나? 이준우는 색다른 주제로 농촌의 삶을 비춰본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고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절로 바뀌는 법은 없다. 길은 스스로 열어야 한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이유는 미래로 나아가는 디딤돌을 다지기 위함이다. 문재인 정부 농정 평가는 새로운 길을 전망하는 데 유력한 방편이 될 수 있다. 다음 정부의 미래구상을 탐지하기 위해서라도 현 정부의 갈지자 행보를 복기하는 작업은 긴요하다. 성장 중심의 생산주의농정은 설 자리를 잃었다. 지속가능농정이 미래의 길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에 대한 의심의 눈길이 많고 두려움도 강하다. 구태(舊態)의 끝자락에 매달려 미래로 나아가기를 거부하는 저항도 거세다. 돌아보니 반성할 일이 너무 많다. 무엇이 정작 중요한 일인지 놓친 게 많다. 표류(表流)에 휩쓸려 저 밑의 도저한 복류(伏流)를 주시하는 데 게을렀다. 근본을 천착하지 않으면 말단의 오류가 거듭되는 법이다. 다시 새긴다. 근본의 성찰 없이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