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교체되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제시된 농업·농촌 공약의 핵심 단어는 직불금, 디지털 혁신, 탄소중립, 식량주권, 경영부담 경감, 농어촌 맟춤형 사회안전망, 환경친화적 축산업 등이었다. 인수위원회가 정리한 농산어촌 관련 국정과제는 농산촌 지원강화 및 성장환경 조성, 미래 성장산업화, 식량주권 확보, 경영안정 강화로 요약된다. 중요한 문제들을 거의 다 언급하고 있는 것럼 보인다. 그러나 국정과제 체계에서 ‘환경친화적 농업’을 ‘농업의 미래 성장산업화’의 하부 과제로 포함시키고 ‘탄소중립 실현’을 농가경영안정을 위한 직불금의 가능성으로만 언급하는 인식으로 복합 위기에 대처하고 새로운 활로를 열어갈 수 있을까? 새 대통령 취임사에서 경제와 관련해서는 ‘빠른’ 성장,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이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이 4총사의 능력에 대한 과신(過信)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위기의 원인은 아닌가?
농업·농촌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경제 전체가 위기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여러 상품들의 세계적 공급망이 흔들리고 고삐 풀린 인플레의 공포가 몰려오고 있다. 1990년대 동구권 몰락 이후 영원할 것 같았던 전 세계적 자유무역 질서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AI, 사물 인터넷, 메타버스, 현란한 디지털 신기술이 기회와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고 하지만, 일자리는 불안해지고 시대의 물결에 올라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격차는 커지고 있다. 소득 양극화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주식과 암호화폐와 부동산에 몰두하지만, 미국의 금융긴축으로 각종 자산 가치는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무엇보다 코로나 위기는 잠간 완화된 듯하지만 현재진행형이다. 전 세계적 감염병의 원인으로 무분별한 경제활동으로 인한 생태계 균형의 교란 및 파괴가 지목되고 있다. 기후위기, 생태위기의 그림자가 우리들의 집 앞 골목을 돌아든 정도가 아니라 이미 방 안 한복판에 점점 뚜렷하게 드리워지고 있다.
이렇게 사방에서 다가드는 총체적 위기 속에서 우리 농업·농촌은 무엇을 나침반으로 삼아 어디로 가야 할까? 지난 문재인 정부 시기 ‘사람과 환경 중심의 농정’, ‘직불제 중심 농정’ 등 시대의 흐름을 읽고자 한 구호와 시도들은 있었지만 그 열매가 아주 알차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새롭게 시작하는 정부는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농정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할까?
이런 질문을 가지고 이번 호 특집으로는 ‘새 정부의 농정과제’라는 제목으로 농정연구센터 내부 및 외부에서 협업을 해온 연구자들이 벌인 토론 내용을 정리하였다. 이명기는 주제발제를 통해서 현재 농업·농촌의 대내외 여건을 정리하고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 되었던 ‘농정 틀 전환’을 평가하였다. 이어서 이 시점에서 농정이 지향해야 할 바와 농정전략을 제시하였다. 특히 농정틀을 구성하는 문재인 정부 시절 농정의 비전과 목표 등은 제시되었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법과 계획, 거버넌스와 재정 구조, 정책의 추진체계와 주체 면에서 변화가 없었던 것을 문제로 지적하였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지속가능·혁신 농업 체계, 인구 분산과 국토 균형발전을 위한 농촌 재생, 안정적 먹거리 체계, 저탄소·환경친화 농업·농촌을 농정의 지향점으로 제시하면서 그 실현을 위한 농정체계의 전환 과제로 농촌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범부처 협력 및 중앙-지방 농정협력의 강화, 재정지출체계 개선, 그리고 농업 R&D 체계의 혁신을 제시하였다. 이어진 패널 토론에는 김태연, 장민기, 김조안, 황영모가 참여하였는데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농업·농촌의 주체로서 청년과 농협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 개진이 있었다. 특히 농촌정책과 농산물 수급안정과 관련한 농림축산식품부의 역할, 4차 산업혁명의 맥락에서 기술과 자본의 역할, 그리고 농업정책이 일반 국민들로부터 괴리된 현실에 대한 도전적인 문제제기가 있었다. 좋은 농업정책의 바탕이 될 수 있는 국민경제적 관점에 입각한 정량적이고 설득력있는 연구가 부족하다는 ‘자아비판’도 이루어졌다. 현재의 농정 추진체계가 바뀌지 않은 채로, 새 정부의 중요 공약인 공익직불제 예산 확대가 이루어진다면 생길 심각한 문제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R&D도 농정체계의 개편이라는 큰 틀에서 고민되어야 한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이상의 토론은 답을 주기보다는 앞으로 다양한 주체들이 치열하게 논쟁해야 할 질문을 많이 던진 자리였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전세계 먹을거리 가격이 들썩이면서 식량 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 식량가격지수(Food Price Incex)는 최근 실질가치로 최고기록을 경신하였다. 2014~2016년 평균을 100으로 했을 때 2022년 3월 159.7이 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곡물가격지수는 더 높아서 170.2, 식물성 기름 가격지수는 심지어 251.8라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하였다. 인구가 5천만이나 되고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이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농지를 어떻게 확보하고, 무엇을 거기에 심으며, 생산과 소비는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근본적 질문이 다시 절실해지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번 호 <이슈>에서는 우리 농업의 기반이 되는 농지와, 자급률이 극히 취약한 밀, 그리고 조직화된 농산물 수요와 지역 생산의 연계에 대한 글을 실었다.
길청순의 글은 수도권 A도시 농지이용계획 수립을 지원한 경험을 바탕으로 도시성이 강한 지역에서 농지 보존과 이용과 관련한 문제점과 고민을 보여준다. 수도권에서는 농지를 둘러싸고 ‘도시 개발과 성장’ 관점과 ‘농업·농촌 유지와 보존’이라는 관점이 더욱 날카롭게 충돌한다. 최근 LH 직원 투기 사태로 인해서 농지관리체계 개편 및 강화에 대한 요구가 강해진 결과 법적 개선 노력이 있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력과 체계가 부족하고 주민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부재하여 그 실효성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그는 또한 국토계획법과 농지법 사이에 농지전용 절차 관련 규정에 부정합 상태라는 제도적 결함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대규모 개발이 있을 때 불가피하게 이루어지는 농지 감소로 인한 농업기반 축소 문제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 길청순은 농지 기반의 모든 개발계획 속에 농업·농촌 및 지속가능 먹거리 체계 관련 인프라 구축을 위한 공간 확보를 명시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던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투기 목적 농지 소유에 대처하고 개발이익을 공유하기 위해서 지역 차원에서 행할 수 있는 거버넌스와 조례 제정의 사례들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송동흠은 쌀과 더불어 우리 식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곡물인 밀의 국내 자급기반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 하에서 우리밀 생산과 소비의 역사를 2000년에 걸쳐서 훑어보고 있다. 짧은 지면이지만 옛 문헌들을 따라가며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근대 이전에 이미 한반도 내 농업과 식생활에서 밀이 작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지배전략의 일환으로 밀 품종 연구, 재배면적 확대, 현대적 제분시설이 도입되는 등의 변화가 있은 후, 미 군정기 원조 형태로 대거 유입된 미국의 잉여 밀에 밀려서 우리밀은 제분산업 원료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고 1960, 1970년대의 정책은 명목에 그치고 말았다. 1980년대 말 우루과이 라운드의 충격 속에서 우리 농업 유지, 환경보전, 안전한 먹을거리를 위한 사회운동으로 ‘우리밀살리기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생산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전국적 생산확대를 이루었지만, 의미있는 규모에 이르지 못하였고 가격과 품질 양 측면에서 시장요구를 충족하지 못함에 따라 비용 효율성을 보장할 만큼 충분한 수요를 확보하지 못하였고 이 문제는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송동흠은 그 극복을 위해서는 가격·품질경쟁력의 획기적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정책과 함께, 기존 우리밀 시장의 중심을 이뤄 온 생협·친환경을 넘어서 일반 시장에서의 우리밀 소비 확대를 전제로 한 정책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급식지원센터의 운영 현황을 정리한 정상택의 글은 전국 116개 지자체에 걸쳐 128개나 존재하는 급식지원센터들이 어떤 조직이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설립 및 지원 근거, 운영 주체, 내부 조직, 생산자 조직과의 연계, 시설과 장비, 식재료 공급 체계, 공급실적, 그리고 수행 또는 지원하고 있는 정책사업 등 여러 각도에서 정리하고 있다. 특히 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실무자들에 대한 심층면접을 통해서 파악한 애로점들이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공공기관별 거래 시스템의 차이, 최저가 중심 구매 관행, 지역우수 농산물 단가 책정 기준 부재, 농가조직화 수준, 지자체장의 정치적 성향에 좌우되는 공공급식 사업의 불안정성 등의 문제를 토로하였다.
‘농정연구’는 현장에서 농업과 지역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현장’이라는 꼭지로 소개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청년과 지역 단위의 계획에 주목하였다. 고령화와 공동화라는 오래된 병을 앓고 있는 우리 농업·농촌에서 최근 귀농·귀촌 인구의 증가는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기회로 주목받고 있다. 2020년 귀농인구는 12,570명, 귀촌인구는 477,122명이나 되었다. 다른 한편 시장과 중앙정부의 계획이라는 두 개의 바퀴로 굴러온 농업이 포용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지역의 특색을 무시해왔다는 반성 아래 지역수준에서 지역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농업과 경제의 지역 내 순환성을 높이는 농업발전전략을 수립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재문은 지역에 뿌리 박은 청년 인재들을 길러내고, 청년조직과 사회적 경제적 주체 등 다양한 주체 간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현장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 어떤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김제시 신활력플러스추진단의 사례를 통해서 보여준다. 김제는 농가 중 청년층의 비중이 전국 평균에 비해서 높지만 ‘청년층이 할 일이 없다’, ‘자본과 기술이 없는 청년들은 무언가를 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라는 의견이 적지 않은 곳이다. 여기서 청년세대가 농업·농촌 경제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사업단은 1단계 지역탐색, 2단계 아이디어 생성단계, 3단계 사업화 단계라는 개념으로 성장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있다. 특히 사업화 단계에서는 개별 경영체나 법인에 대한 시설투자 지원과 공공 거점공간·시설 조성 및 거점조직과의 연계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의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른 한편, 지역 내 주체육성과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서 신활력플러스 사업단이 법인화와 거점조직화를 이루어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통해서 로컬푸드, 공동체 활성화, 도시 및 농촌재생 분야를 통합적으로 아우르는 민간 전문조직으로의 진화를 지향하고 있다.
자치분권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시군이 만드는 농업발전계획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김햇살이 소개하고 있는 충북 괴산군의 ‘순정’농업발전전략은 기초자치단체 수준의 농업발전계획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괴산군은 인구 4만이 조금 안되고 인구소멸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평가되는 전형적 농촌지역이다. 인구감소 추세가 2010년 이후 역전되어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고령농가의 비율이 매우 높아서 영농 지속성 감소 우려가 높다. 이러한 배경에서 수립한 2022년~2026년 발전전략은 이전의 농업전략이 단기적 성과, 일부 특화 또는 전략품목 시장 확대에 집중했던 것을 반성하면서 중장기적으로 지역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하려는 철학을 담아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에 두고 있다. 핵심가치로 환경, 순환, 진심, 미래, 관계를 내세우고, 목표로는 ‘한국 유기농업과 미래농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하는 순정농업’을 제시하였다. 그 실현을 위한 5대 전략으로 ‘순정농민’ 농업소득 증대, 경축순환기반 탄소순환농정, 유기농 생태 기반 확대, 10대 품목 부가가치 증대, 관계인구 증가를 위한 ‘괴산친구’ 육성 등을 수립하였다. 이때 순정농민이란 지역 공동브랜드 출하, 무제초제 농업 , 농부일지 작성, 농촌공동체 활동 등을 실천하는 농민이다.
정권이 교체되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위기와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오래된 ‘과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삶의 가장 밑바탕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며 농업·농촌의 기초를 회복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제를 찾고, 그것을 제대로 수행해내기 위해 지혜를 모을 때다. 이번 호에 실린 대담과 글들도 그런 노력 중 작은 고리이다.
*2002년 ‘농정연구’ 창간 이래 기획과 편집을 맡아왔던 황수철 박사가 공직을 맡게 됨에 따라 부족한 제가 편집을 맡게 되었습니다. 황 박사님이 지키고 높여 오신 ‘농정연구’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농정연구’가 앞으로도 농업과 농촌 문제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읽을 만한 계간지로 남을 수 있도록 농정연구센터의 모든 구성원들과 힘을 모아 나가겠습니다.
발간일 : 2022년 4월 30일 분량 : 188쪽
[책머리에] 정권교체? 생각교체! / 이명헌 (농정연구센터 편집위원장,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정권이 교체되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제시된 농업·농촌 공약의 핵심 단어는 직불금, 디지털 혁신, 탄소중립, 식량주권, 경영부담 경감, 농어촌 맟춤형 사회안전망, 환경친화적 축산업 등이었다. 인수위원회가 정리한 농산어촌 관련 국정과제는 농산촌 지원강화 및 성장환경 조성, 미래 성장산업화, 식량주권 확보, 경영안정 강화로 요약된다. 중요한 문제들을 거의 다 언급하고 있는 것럼 보인다. 그러나 국정과제 체계에서 ‘환경친화적 농업’을 ‘농업의 미래 성장산업화’의 하부 과제로 포함시키고 ‘탄소중립 실현’을 농가경영안정을 위한 직불금의 가능성으로만 언급하는 인식으로 복합 위기에 대처하고 새로운 활로를 열어갈 수 있을까? 새 대통령 취임사에서 경제와 관련해서는 ‘빠른’ 성장,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이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이 4총사의 능력에 대한 과신(過信)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위기의 원인은 아닌가?
농업·농촌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경제 전체가 위기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여러 상품들의 세계적 공급망이 흔들리고 고삐 풀린 인플레의 공포가 몰려오고 있다. 1990년대 동구권 몰락 이후 영원할 것 같았던 전 세계적 자유무역 질서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AI, 사물 인터넷, 메타버스, 현란한 디지털 신기술이 기회와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고 하지만, 일자리는 불안해지고 시대의 물결에 올라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격차는 커지고 있다. 소득 양극화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주식과 암호화폐와 부동산에 몰두하지만, 미국의 금융긴축으로 각종 자산 가치는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무엇보다 코로나 위기는 잠간 완화된 듯하지만 현재진행형이다. 전 세계적 감염병의 원인으로 무분별한 경제활동으로 인한 생태계 균형의 교란 및 파괴가 지목되고 있다. 기후위기, 생태위기의 그림자가 우리들의 집 앞 골목을 돌아든 정도가 아니라 이미 방 안 한복판에 점점 뚜렷하게 드리워지고 있다.
이렇게 사방에서 다가드는 총체적 위기 속에서 우리 농업·농촌은 무엇을 나침반으로 삼아 어디로 가야 할까? 지난 문재인 정부 시기 ‘사람과 환경 중심의 농정’, ‘직불제 중심 농정’ 등 시대의 흐름을 읽고자 한 구호와 시도들은 있었지만 그 열매가 아주 알차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새롭게 시작하는 정부는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농정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할까?
이런 질문을 가지고 이번 호 특집으로는 ‘새 정부의 농정과제’라는 제목으로 농정연구센터 내부 및 외부에서 협업을 해온 연구자들이 벌인 토론 내용을 정리하였다. 이명기는 주제발제를 통해서 현재 농업·농촌의 대내외 여건을 정리하고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 되었던 ‘농정 틀 전환’을 평가하였다. 이어서 이 시점에서 농정이 지향해야 할 바와 농정전략을 제시하였다. 특히 농정틀을 구성하는 문재인 정부 시절 농정의 비전과 목표 등은 제시되었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법과 계획, 거버넌스와 재정 구조, 정책의 추진체계와 주체 면에서 변화가 없었던 것을 문제로 지적하였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지속가능·혁신 농업 체계, 인구 분산과 국토 균형발전을 위한 농촌 재생, 안정적 먹거리 체계, 저탄소·환경친화 농업·농촌을 농정의 지향점으로 제시하면서 그 실현을 위한 농정체계의 전환 과제로 농촌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범부처 협력 및 중앙-지방 농정협력의 강화, 재정지출체계 개선, 그리고 농업 R&D 체계의 혁신을 제시하였다. 이어진 패널 토론에는 김태연, 장민기, 김조안, 황영모가 참여하였는데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농업·농촌의 주체로서 청년과 농협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 개진이 있었다. 특히 농촌정책과 농산물 수급안정과 관련한 농림축산식품부의 역할, 4차 산업혁명의 맥락에서 기술과 자본의 역할, 그리고 농업정책이 일반 국민들로부터 괴리된 현실에 대한 도전적인 문제제기가 있었다. 좋은 농업정책의 바탕이 될 수 있는 국민경제적 관점에 입각한 정량적이고 설득력있는 연구가 부족하다는 ‘자아비판’도 이루어졌다. 현재의 농정 추진체계가 바뀌지 않은 채로, 새 정부의 중요 공약인 공익직불제 예산 확대가 이루어진다면 생길 심각한 문제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R&D도 농정체계의 개편이라는 큰 틀에서 고민되어야 한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이상의 토론은 답을 주기보다는 앞으로 다양한 주체들이 치열하게 논쟁해야 할 질문을 많이 던진 자리였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전세계 먹을거리 가격이 들썩이면서 식량 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 식량가격지수(Food Price Incex)는 최근 실질가치로 최고기록을 경신하였다. 2014~2016년 평균을 100으로 했을 때 2022년 3월 159.7이 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곡물가격지수는 더 높아서 170.2, 식물성 기름 가격지수는 심지어 251.8라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하였다. 인구가 5천만이나 되고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이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농지를 어떻게 확보하고, 무엇을 거기에 심으며, 생산과 소비는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근본적 질문이 다시 절실해지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번 호 <이슈>에서는 우리 농업의 기반이 되는 농지와, 자급률이 극히 취약한 밀, 그리고 조직화된 농산물 수요와 지역 생산의 연계에 대한 글을 실었다.
길청순의 글은 수도권 A도시 농지이용계획 수립을 지원한 경험을 바탕으로 도시성이 강한 지역에서 농지 보존과 이용과 관련한 문제점과 고민을 보여준다. 수도권에서는 농지를 둘러싸고 ‘도시 개발과 성장’ 관점과 ‘농업·농촌 유지와 보존’이라는 관점이 더욱 날카롭게 충돌한다. 최근 LH 직원 투기 사태로 인해서 농지관리체계 개편 및 강화에 대한 요구가 강해진 결과 법적 개선 노력이 있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력과 체계가 부족하고 주민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부재하여 그 실효성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그는 또한 국토계획법과 농지법 사이에 농지전용 절차 관련 규정에 부정합 상태라는 제도적 결함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대규모 개발이 있을 때 불가피하게 이루어지는 농지 감소로 인한 농업기반 축소 문제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 길청순은 농지 기반의 모든 개발계획 속에 농업·농촌 및 지속가능 먹거리 체계 관련 인프라 구축을 위한 공간 확보를 명시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던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투기 목적 농지 소유에 대처하고 개발이익을 공유하기 위해서 지역 차원에서 행할 수 있는 거버넌스와 조례 제정의 사례들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송동흠은 쌀과 더불어 우리 식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곡물인 밀의 국내 자급기반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 하에서 우리밀 생산과 소비의 역사를 2000년에 걸쳐서 훑어보고 있다. 짧은 지면이지만 옛 문헌들을 따라가며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근대 이전에 이미 한반도 내 농업과 식생활에서 밀이 작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지배전략의 일환으로 밀 품종 연구, 재배면적 확대, 현대적 제분시설이 도입되는 등의 변화가 있은 후, 미 군정기 원조 형태로 대거 유입된 미국의 잉여 밀에 밀려서 우리밀은 제분산업 원료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고 1960, 1970년대의 정책은 명목에 그치고 말았다. 1980년대 말 우루과이 라운드의 충격 속에서 우리 농업 유지, 환경보전, 안전한 먹을거리를 위한 사회운동으로 ‘우리밀살리기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생산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전국적 생산확대를 이루었지만, 의미있는 규모에 이르지 못하였고 가격과 품질 양 측면에서 시장요구를 충족하지 못함에 따라 비용 효율성을 보장할 만큼 충분한 수요를 확보하지 못하였고 이 문제는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송동흠은 그 극복을 위해서는 가격·품질경쟁력의 획기적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정책과 함께, 기존 우리밀 시장의 중심을 이뤄 온 생협·친환경을 넘어서 일반 시장에서의 우리밀 소비 확대를 전제로 한 정책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급식지원센터의 운영 현황을 정리한 정상택의 글은 전국 116개 지자체에 걸쳐 128개나 존재하는 급식지원센터들이 어떤 조직이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설립 및 지원 근거, 운영 주체, 내부 조직, 생산자 조직과의 연계, 시설과 장비, 식재료 공급 체계, 공급실적, 그리고 수행 또는 지원하고 있는 정책사업 등 여러 각도에서 정리하고 있다. 특히 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실무자들에 대한 심층면접을 통해서 파악한 애로점들이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공공기관별 거래 시스템의 차이, 최저가 중심 구매 관행, 지역우수 농산물 단가 책정 기준 부재, 농가조직화 수준, 지자체장의 정치적 성향에 좌우되는 공공급식 사업의 불안정성 등의 문제를 토로하였다.
‘농정연구’는 현장에서 농업과 지역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현장’이라는 꼭지로 소개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청년과 지역 단위의 계획에 주목하였다. 고령화와 공동화라는 오래된 병을 앓고 있는 우리 농업·농촌에서 최근 귀농·귀촌 인구의 증가는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기회로 주목받고 있다. 2020년 귀농인구는 12,570명, 귀촌인구는 477,122명이나 되었다. 다른 한편 시장과 중앙정부의 계획이라는 두 개의 바퀴로 굴러온 농업이 포용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지역의 특색을 무시해왔다는 반성 아래 지역수준에서 지역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농업과 경제의 지역 내 순환성을 높이는 농업발전전략을 수립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재문은 지역에 뿌리 박은 청년 인재들을 길러내고, 청년조직과 사회적 경제적 주체 등 다양한 주체 간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현장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 어떤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김제시 신활력플러스추진단의 사례를 통해서 보여준다. 김제는 농가 중 청년층의 비중이 전국 평균에 비해서 높지만 ‘청년층이 할 일이 없다’, ‘자본과 기술이 없는 청년들은 무언가를 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라는 의견이 적지 않은 곳이다. 여기서 청년세대가 농업·농촌 경제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사업단은 1단계 지역탐색, 2단계 아이디어 생성단계, 3단계 사업화 단계라는 개념으로 성장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있다. 특히 사업화 단계에서는 개별 경영체나 법인에 대한 시설투자 지원과 공공 거점공간·시설 조성 및 거점조직과의 연계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의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른 한편, 지역 내 주체육성과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서 신활력플러스 사업단이 법인화와 거점조직화를 이루어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통해서 로컬푸드, 공동체 활성화, 도시 및 농촌재생 분야를 통합적으로 아우르는 민간 전문조직으로의 진화를 지향하고 있다.
자치분권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시군이 만드는 농업발전계획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김햇살이 소개하고 있는 충북 괴산군의 ‘순정’농업발전전략은 기초자치단체 수준의 농업발전계획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괴산군은 인구 4만이 조금 안되고 인구소멸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평가되는 전형적 농촌지역이다. 인구감소 추세가 2010년 이후 역전되어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고령농가의 비율이 매우 높아서 영농 지속성 감소 우려가 높다. 이러한 배경에서 수립한 2022년~2026년 발전전략은 이전의 농업전략이 단기적 성과, 일부 특화 또는 전략품목 시장 확대에 집중했던 것을 반성하면서 중장기적으로 지역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하려는 철학을 담아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에 두고 있다. 핵심가치로 환경, 순환, 진심, 미래, 관계를 내세우고, 목표로는 ‘한국 유기농업과 미래농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하는 순정농업’을 제시하였다. 그 실현을 위한 5대 전략으로 ‘순정농민’ 농업소득 증대, 경축순환기반 탄소순환농정, 유기농 생태 기반 확대, 10대 품목 부가가치 증대, 관계인구 증가를 위한 ‘괴산친구’ 육성 등을 수립하였다. 이때 순정농민이란 지역 공동브랜드 출하, 무제초제 농업 , 농부일지 작성, 농촌공동체 활동 등을 실천하는 농민이다.
정권이 교체되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위기와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오래된 ‘과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삶의 가장 밑바탕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며 농업·농촌의 기초를 회복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제를 찾고, 그것을 제대로 수행해내기 위해 지혜를 모을 때다. 이번 호에 실린 대담과 글들도 그런 노력 중 작은 고리이다.
*2002년 ‘농정연구’ 창간 이래 기획과 편집을 맡아왔던 황수철 박사가 공직을 맡게 됨에 따라 부족한 제가 편집을 맡게 되었습니다. 황 박사님이 지키고 높여 오신 ‘농정연구’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농정연구’가 앞으로도 농업과 농촌 문제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읽을 만한 계간지로 남을 수 있도록 농정연구센터의 모든 구성원들과 힘을 모아 나가겠습니다.